지난 5월 28일 몇몇 여성들이 빨간 피켓을 들고 서울특별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쳤습니다. “서울시는 월경 공공성을 보장하라”
이날은 ‘세계 월경의 날’이었습니다. 여성의 월경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깨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여성의 월경 기간이 5일 정도, 28일을 주기로 돌아온다는 의미에서 5월 28일이 됐습니다.
2016년 5월 국민일보가 이른바 ‘깔창 생리대’ 이슈를 첫 보도하고 5년이 흘렀습니다.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생겼고, 더 나아가 모든 여성이 건강하게 월경을 할 수 있는 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서울시의회도 2019년 12월 ‘서울특별시 어린이·청소년 인권 조례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위생용품 지원대상에 ‘빈곤’을 삭제하고, 여성 어린이·청소년으로 명시해 모든 여성 어린이·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2021년 6월이 됐는데도 조례에 따른 생리대 보편지급을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의당 서울시당과 여성환경연대 등 35개 단체가 모인 ‘서울시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는 이를 규탄하기 위해 서울시에 청소년 월경용품 보편지급 예산을 편성하고 지급을 시행하라고 촉구한 겁니다.
조례 있는데 왜 안 하나?
조례가 있는데 왜 서울시는 예산을 편성해 생리대 보편지급을 하고 있지 않은 걸까요? 서울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위법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조례만으로는 보편지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실제 2019년 12월 당시 개정조례안 심사보고서에서는 “법령(청소년복지지원법 시행령)은 생리대 지원범위를 ‘저소득층 청소년’으로 한정하고 있으나 본 개정안은 모든 어린이·청소년에게 지급하도록 개정하고 있다”며 “개정안이 생리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점은 법령의 목적에는 부합하지만 그 범위와 방법 등 구체적인 지원방법은 법령과 상이하며 시장이 시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예산편성을 강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의회가 조례 제·개정을 통해 지방자치체장에게 예산편성을 강제하게 될 경우 대법원은 이를 시장의 전속적 권한인 예산편성권을 침해해 지방자치법 위반이라고 판시한다”고 덧붙입니다.
법령상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예산안 편성 또는 국·시피보조금의 예산계상 신청 등의 사무에 관한 집행권한을 부여하면서도 그 권한행사에 대한 의회의 사전 의결 또는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의 권한 행사를 견제·제한하는 규정을 두거나, 그러한 내용의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는 한, 하위법규인 조례로써는 단체장의 예산안 편성권 또는 국·시비보조금의 예산 계상 신청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하는 내용의 규정을 할 수 없고, 이러한 내용의 조례가 제정되었다면, 이는 지방자치법에 위배된다. (대법원판례 1996.5.10. 95추87판결)
다행히 지난 4월 20일 청소년복지지원법이 개정되면서 여성 어린이·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을 위한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법 5조 3항을 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여성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하여 여성청소년이 생리용품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를 위한 기준·범위, 방법, 신청 및 지급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고, 내년 4월 21일부터 시행합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예산편성이 가능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보편지급 근거 마련됐지만… 돈이 문제
그럼 내년 4월 21일부터는 서울시의 모든 여성 어린이·청소년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급해 이들의 ‘월경권’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지원대상을 현재 검토 중”이라며 “정해진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에 보편지급을 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할 수 있어서 소득기준에 따라 점차 늘려가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장 보편지급을 하기엔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지원 연령도 문제입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지원연령을 좁힐 수도 있는 셈이죠.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성조숙증’으로 월경 시기가 빨라지는 여성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범위를 넓게 잡길 원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어린이는 만 12세 미만, 청소년은 만 12세 이상~19세 미만입니다. 반면 청소년기본법에 따르면 ‘청소년’은 9세 이상 24세 이하입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