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탔던 택시, 폭행 후 10m 운행… 특가법 적용 가능성 ↑

입력 2021-06-04 17:10 수정 2021-06-04 17:11
'택시기사 폭행' 사건 이후 증거인멸 교사 혐의 등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지난달 31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부실수사 의혹을 조사 중인 경찰이 택시기사가 폭행을 당한 직후 차량을 조금 운행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석에 따라 이 전 차관에게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6일 사건 당시 이 전 차관에게 멱살을 잡혔던 택시기사 A씨는 그 직후 차량을 약 10m 정도 운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에서 이 전 차관은 술에 취한 자신을 A씨가 하차를 위해 깨우려하자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았다가 놓는다. A씨가 차량을 10m 정도 후진한 것은 바로 그 직후다.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를 폭행할 경우 적용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은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상태서 벌어진 폭행도 특가법 적용 대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A씨가 이 전 차관의 하차를 위해 잠깐 정차했다가 바로 움직였다는 정황이 확인되면서 당시 사건을 운행 중 폭행 사건으로 판단할 여지도 커졌다. 경찰 조사와 별개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이 전 차관에게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경찰은 사건 당시 “피해자인 A씨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이 전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이 전 차관의 취임 후 폭행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고위 인사 ‘봐주기 수사’ 의혹이 일었다.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처벌하는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가 아니라 반의사불벌죄인 단순폭행죄로 사건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서울경찰청은 지난 1월 말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봐주기 수사 의혹에 대한 내부 조사를 이어왔다. 조사단은 이 전 차관의 증거인멸 교사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전 차관은 폭행 사건 이틀 뒤 A씨를 찾아가 합의금 1000만원과 함께 “폭행 영상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지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지울 필요가 있나. (경찰에) 안 보여주면 된다”라는 취지로 답하며 1000만원을 받았다.

경찰은 이 전 차관을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지 여부를 두고 막바지 법리 검토 중이다. A씨 역시 이 차관의 증거인멸 요구에 응했다는 점에서 공범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검찰 송치를 검토하고 있다.

관건은 A씨가 이 전 차관의 요구대로 실제 블랙박스 영상을 지웠느냐다. 영상을 삭제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증거인멸 시도는 있었지만 미수에 그친 것이다. 증거인멸 교사죄는 미수범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이 차관은 전날 사건 관련 입장문을 통해 “택시기사는 폭행 사건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 8일 합의한 뒤 ‘영상을 지우는 게 어떠냐’는 요청을 거절했고, 블랙박스 영상 원본이나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 원본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