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추락 노동자, 밤새 방치돼…생일날 주검으로

입력 2021-06-04 08:47
기사와 무관한 사진. 국민일보DB

광주의 한 아파트 건설 공사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사다리 추락 사고를 당한 뒤 다음 날까지 홀로 방치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족 측은 공사 현장에 안전 관리자가 없는 등 사측이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목숨을 잃은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4일 광주 서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건설 공사장에서 A씨(58)가 계단에 놓인 1~2m 높이의 사다리에서 추락했다. 그는 계단 벽면에 페인트칠을 하기 위한 평탄화 작업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머리를 다친 A씨는 일어나지 못했지만, 그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료 노동자가 다음 날 오전 6시30분쯤 가족·지인의 연락을 받고 급히 현장을 찾아간 뒤에야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머리 충격에 의한 뇌출혈이었다.

유족은 A씨가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됐다면 목숨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사 현장을 수시로 돌아보며 안전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 안전 관리자가 사고 현장을 둘러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사장 문을 닫기 전 안전관리자 또는 경비원들이 현장에 사람이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딸은 “안전 수칙들만 지켰어도 아버지랑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은 있었을 거다. 회사가 자기 임무만 다했어도 아버지의 생신날을 기일로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경찰은 회사 관계자 등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해 형사 처벌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부검 결과와 노동청 특별사법경찰관의 종합 조사 결과에 따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유족은 실종 신고 후 경찰 측 대응도 비판하고 있다. 맞벌이하는 딸 부부 대신 매일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오는 손자를 마중 나갔던 A씨는 사고 당일 하원 시간이 지나도록 가족과 연락되지 않았고, 이에 가족은 같은 날 오후 8시15분쯤 실종 신고를 했다. 가족은 공사장에서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으나 정확한 현장 위치를 알지 못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A씨의 딸은 아버지의 출근 시각, 출발 장소, 차량 번호를 알고 있다며 CCTV를 추적해 공사 현장을 찾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경찰은 “CCTV는 인도만 비출 뿐 차량 추적이 어렵다”고 답했다. 결국 딸은 수소문 끝에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쌍촌동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경찰에 알렸다. 경찰은 이에 쌍촌동 아파트 공사 현장 주변을 수색했으나 A씨를 발견할 수 없었다.

유족은 “다쳐서 쓰러져 있을 수 있다”며 공사 현장 내부를 수색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문이 잠긴 공사 현장을 임의로 출입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결국 A씨의 딸은 다음날 오전에야 아버지가 쌍촌동이 아닌 화정동 건설 현장에서 동료에 의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A씨의 딸은 “CCTV로 차량을 찾고, 공사 현장을 수색하는 건 민간인인 우리가 할 수 없으니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것 아니냐”며 “안 된다고만 할 거면 실종 신고를 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늦은 시각이라 민간 CCTV를 확인하는 게 어렵고, 관제센터 CCTV는 방범용이어서 도로만 찍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한 것”이라며 “휴대전화 위치가 추적된 화정동과 가족이 진술한 쌍촌동 주변 건설현장을 면밀히 수색했다”고 설명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