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간 아버지가 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

입력 2021-06-04 07:16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10분간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을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네티즌이 3일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늘 다이소에서 만난 아저씨를 찾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자동차 스마트키 배터리를 갈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며 “자동차 회사에 다니신다는 말씀을 듣고 혹시나 여기 회원일까 싶어 가입하고 글을 남긴다”고 했죠.

종일 비가 쏟아졌던 이날, 운전초보인 A씨는 참 난감했다고 합니다. 일이 있어 차를 써야 했는데 아직 빗길 운전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는 빗방울 때문에 잘 안 보이는 사이드미러라도 계속 닦고자 물티슈를 사러 다이소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차를 한 이후 더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마트키가 작동하지 않았던 겁니다.

A씨는 일단 매장으로 들어갔지만 배터리를 어떻게 갈아야 하는 건지, 배터리 문제가 맞긴 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혼란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겨우 보조열쇠를 빼낸 뒤에도 스마트키를 여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죠. 힘으로 여는 게 맞는지, 이렇게 열다가 부수는 건 아닌지…. 온갖 고민이 들었다고 합니다.

A씨는 “순간 저도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옆에서 물건을 보시던 아저씨께 도움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선뜻 키를 받아 열고, 건전지 코너로 그를 데려가고, 맞는 배터리를 찾아주고, 계산을 하고 온 A씨에게 그 건전지를 건네받아 교체까지 해줬다고 합니다. 헤어지기 전 “내가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는 거 어떻게 알았느냐”며 허허 웃었다는 아저씨. A씨는 글에서 “10분간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작은 친절이었지만 A씨가 이토록 감동한 건 그에게 남모를 사정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가족을 떠나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고 했습니다. 예술 전공생이었던 그는 꿈을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죠. A씨는 “낮에는 강의를 듣고, 저녁에는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챙기고, 새벽이나 틈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뛰며 졸지에 가장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며 “그러나 차키가 방전된 게 제가 방전된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어른인 척하면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제가 너무나 작아지는 순간이었어요. 누구 하나 물어볼 데가 없더라고요. 저는 이 사소한 문제 앞에 좌절했고, 너무 지쳐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앞뒤 생각도 없이 아저씨께 말을 걸었던 것 같아요. 저 좀 도와달라고요.”

A씨는 차로 돌아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아저씨가 주신 작은 친절이 저를 다시 일으켜줬다”며 “잠시나마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느끼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A씨의 글엔 수많은 다른 ‘아저씨들’의 댓글이 달렸죠. “사이드미러는 물티슈 말고 휴지로 닦아요. 열선 기능 있으면 사용하고요!” “비 온 뒤에 해 뜬다고 하죠. 글쓴이님의 인생에 따스한 햇빛이 비치길 바랍니다” “소소한 친절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그 마음 간직하시면 주변에 점점 든든한 울타리가 생길 거예요.” “당신도 이미 좋은 어른같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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