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노동법 위반 처벌이 센 편이라고?[국민적관심사]

입력 2021-06-04 08:00
국민일보DB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의 노동법제 처벌규정이 G5(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보다 과도해 국제적 수준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법 등 노동 관련 법률을 위반했을 때 사업주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과도해 문제라는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 노동법 위반시 내려지는 처벌은 수위가 유독 높아 기업인에게 큰 부담을 줄 정도일까.

한경연이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한경연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같이 노동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비슷한 내용의 자료를 내놓으며 처벌 강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 왔다.

같은 듯 다른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노동현장의 임금 체납 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던 사회적 분위기와 한경연의 주장은 전혀 다른 결이다.

대체 어떤 말이 맞는 것일까. [국민적 관심사]는 한경연의 주장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사실관계를 확인해봤다.

최저임금 위반 처벌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최저임금 문제부터 들여다보자. 법 조문만 놓고 보면 처벌 수위는 높다고 볼 수 있다. 징역형 때문이다. 한국은 최저임금을 어겼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반면 G5 국가 대부분은 벌금형만 있고, 징역형은 없다.

그러나 법 적용 현실을 보면 반전이 있다. 국내에서 실제 최저임금으로 처벌되는 사례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경연 자료 캡처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이 2017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고용부의 근로감독으로 최저임금 위반이 적발된 곳은 1278건이지만 사법 처리로 이어진 것은 17건으로 전체의 1.3%에 불과했다. 사법처리가 적은 건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이 최초 적발 사례에 대해선 ‘즉시 시정(미지급분 지급)’하면 입건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적발되더라도 바로 모자란 임금을 지급하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설사 처벌을 받더라도 대부분 위반 금액이 많지 않아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영국은 위반 고용주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대표 자격을 15년간 박탈한다. 독일은 벌금이 최대 50만 유로(약 6억8000만원)에 이른다. 징역형 규정이 없지만, 경제적 처벌 수준의 측면에서 처벌이 한국보다 약하다고 보긴 어려운 셈이다.

부당노동행위 처벌규정

부당노동행위란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삼권 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한국은 노동조합법에서 규정,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한경연은 이런 한국 처벌 수준이 과도하다면서, 독일과 프랑스는 관련 제도 자체가 아예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만 구금 또는 벌금이 부과된다는 게 한경연 설명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부당노동행위제도 연구' 보고서 캡처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프랑스와 독일엔 ‘부당노동행위’라는 말이 없긴 하지만, 노동삼권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있다. 프랑스는 노동법 ‘L2141-2’ 등을 통해 사용자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노동자를 불이익하게 대우하면 형사상 1년의 구금형과 3750유로의 벌금형을, 위법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 2년의 구금과 7500유로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독일의 경우 처벌 수위를 명문화한 규정은 없다. 독일은 집단적 노사관계법 분야를 판례로 규율하도록 하고 있어서다.

프랑스 노동법전 'L2146-2', 법제처, 세계법제정보센터

산업안전보건의무 위반 사망사고 시 처벌

산업안전 의무 위반 관련 한국의 처벌 규정은 사업주에 대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2년 이하 징역을 규정하는 영국이나 6개월 이하 징역을 규정하는 미국과 일본 등에 비교해 강한 규정인 건 사실이다. 독일, 프랑스는 고의·반복 위반 시에만 징역 1년을 매겼다.
한경연 자료 캡처

그러나 이 역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로 지적되는 현실이다. 20대 국회의원이었던 이용득 당시 민주당 의원이 2009년부터 10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열린 재판 6144건을 분석한 결과 피고인의 80.73%가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징역·금고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0.57%에 그쳤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고자 처벌 기준을 ‘징역 1년 이상’으로 하한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돼도 노동 현장에 처벌이 실제 강화되긴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데, 상시 근로자 5명 미만 사업장은 개정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50인 미만 사업장도 향후 3년간은 법 적용에서 유예됐고, 사업발주처나 임대인 등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수차례 안전 의무 위반이 적발된 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때 해당 재해의 책임을 사업주에게 지우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사업주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다.

근로시간 위반 처벌

주당 근로시간 규정은 어떨까. 만연한 장시간 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주 52시간제’를 시행 중인 한국은 이를 어길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G5는 한국보다 근로시간 규제가 엄격하지 않을뿐더러 근로시간 규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유연근로제도도 잘 정착돼 있다고 한경연은 지적했다. 실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살펴보면 한국은 최대 6개월이었지만 프랑스(3년), 일본(1년), 독일(1년), 영국(1년)은 이보다 길었다.
한경연 자료 캡처

처벌 기준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관련 벌칙 규정이 없었고, 프랑스는 벌금형만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독일과 영국은 벌금은 부과하되 고의·반복 위반하거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만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는 게 한경연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칙 ‘[별표3] 개별근로관계법 위반사항 조치기준’은 근로감독관이 근로시간을 위반한 사례를 적발했더라도 14일의 시정기간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기간 내에 시정되지 않을 때만 범죄로 인지하도록 한다는 얘기다.
'근로감독관 직무규칙 [별표3] 개별근로관계법 위반사항 조치기준', 국가법령정보센터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때 한경연이 ‘한국의 처벌규정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내세운 근거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법 조문만 놓고 볼 때 한경연 주장이 일견 맞아 보이는 부분에서도 실제 현실 속 법 적용 상황을 들여다보면 결코 한국의 처벌이 세다고 보기 힘들었다. 다만 산업현장 안전사고나 장시간 근로문화, 최저임금 위반 등 반복되는 고질적인 노동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법조문상 처벌 강화만이 답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현행법상 기준부터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엄격히 법을 적용하는 원칙부터 세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국민적 관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