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팬데믹’ 속 혼자들을 생각한다

입력 2021-06-03 15:52 수정 2021-06-03 17:24
이문재 시인. 창비 제공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은 이문재가 여섯 번째 시집 ‘혼자의 넓이’를 냈다. 2014년 ‘지금 여기가 맨 앞’ 이후 7년 만의 신작이다.

시집에는 총 90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실렸다. 시집 제목도 그렇지만 ‘혼자와 그 적들’ ‘우리의 혼자’ ‘혼자 울 수 있도록’ ‘혼자가 연락했다’ 등 ‘혼자’를 내세운 시들이 많다. ‘시인의 말’을 대신한 ‘혼자의 팬데믹’이란 시에서 전체적인 주제를 엿볼 수 있다.

“혼자 살아본 적 없는/ 혼자가 혼자 살고 있다// 혼자 떠나본 적이 없는/ 혼자가 저 혼자 떠나고 있다// 혼자가 혼자들 틈에서 저 혼자/ 혼자들을 두고 혼자가 자기 혼자// 사람답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 삶을 살고 있다// 춤과 노래가 생겨난 이래/ 지구 곳곳에서 마음 안팎에서/ 처음 마주하는 사태다// 이 낯선 처음이 마지막인지/ 아니면 이것이 진정 새로운 처음인지// 혼자서는 깨닫기 힘든 혼자의 팬데믹이다”

이문재 시인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혼자의 팬데믹”으로 정의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합 금지, 마스크 착용 등이 일상화된 현실은 “혼자 살아본 적 없는 혼자가 혼자 살고 있다”로 묘사된다.

시인은 혼자라는 말을 통해 혼자 살아가는 시대와 존재들을 환기시킨다. “독거와 독거가 거대한 사회를 이루고”(활발한 독거들의 사회), “죽을 때까지 죽도록 일하다가 결국 혼자 죽어가는”(노후) 현실을 드러낸다.

혼자에 대한 생각은 “혼자 살아보니/ 혼자가 아니었다”(혼자와 그 적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혼자 있어보니/ 혼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나는 나 아닌 것으로 나였다.” 또 ‘혼자의 넓이’에서는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혼자 울 수 있도록’이란 시는 혼자의 시대를 살아가는 윤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혼자 울 수 있도록/ 그 사람 혼자 울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기로 한다/ 모른 척 다른 데 바라보기로 한다// …// 그리하여/ 혼자 있음이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짐짓 모른 척하고 곁에 있어주는 생각들/ 멀리서 보고 싶어하는 생각들이/ 서로서로 맑고 향기로운 힘이 될 수 있도록”


1982년 동인지 ‘시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문재는 그동안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제국호텔’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그는 생태주의 시인으로 불린다. 1999년 펴낸 세 번째 시집 ‘마음의 오지’에 실린 산문 ‘미래와의 불화’에서 그는 “시인이 모두 심오한 생태학자인 것처럼, 진정한 시인은 모두 미래를 근심하는 존재”라고 썼다.

이번 시집에서도 3부를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편들로 채웠다. 특히 ‘전환’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진다. ‘전환 학교’란 시가 대표적인데 “우리는 이야기 속으로 던져진 존재/ 우리를 키운 것은 구할이 이야기다/ 이야기를 바꿔야 미래가 달라진다”면서 “심청이 아빠에게/ 공양미 삼백석 영수증을/ 건네며 말했다// 다음엔 아빠가 빠져// 온종일 물을 긷던 콩쥐가/ 팥쥐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우리 가출하자” 같은 이야기의 반전을 보여준다.

‘어제 죽었다면’이란 시도 “질문을 바꿔야/ 다른 답을 구할 수 있다”며 “이렇게 바꿔보자// 만일 내가 내일 죽는다면, 말고/ 어제 내가 죽었다면, 으로// 내가 어제 죽었다고/ 상상해보자// 만일 내가 어제 죽었다면”이라고 제안한다.

이밖에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들이 많다. 생태주의 잡지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고 김종철 선생의 사십구제에 쓴 시, ‘기본소득’ 창간호 축사 등도 눈길을 끈다. 창비. 208쪽. 9000원.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