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처벌할 일을…2시간반만에 발부된 女부사관 성추행범 구속영장

입력 2021-06-03 05:00
숨진 공군 여성 부사관 이모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모 중사가 2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압송되고 있다. 법원은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장 중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국방부 제공

공군 부사관의 성추행 가해자 장모 중사가 2일 구속됐다.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공군의 부실 초동 수사와 늑장 대응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군은 피해 사실 규명에 핵심 증거가 될 가해자의 휴대전화는 피해자가 숨진 지 열흘째에야 확보했다. 피해자 보호에도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군으로부터 사건 보고를 받은 국회 국방위 소속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이 중사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뒤인 3월 5일 소속 부대 공군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에서 최초 피해자 조사를 받았다. 선임 부사관인 장 중사가 행한 신체 접촉 등 강제추행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가해자의 주장은 달랐다. 장 중사는 같은 달 15일 이뤄진 첫 가해자 조사에서 일부 혐의만 시인한 채 피해자가 주장한 구체적 피해진술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이 중사 사망 뒤에야 휴대전화 확보

공군 군사경찰은 사건 내용이 담겨있을 수 있는 휴대전화는 압수하지 않았다. 당시 불구속 상태였던 장 중사가 증거 인멸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었다. 휴대전화 확보는 이 중사 사망 열흘째인 지난달 31일에야 이뤄졌다. 피해 발생 석 달 만이다.

공군 측은 피해자를 분리하기 위한 조치도 뒤늦게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피의자가 다른 부대로 옮긴 것은 강제추행이 발생한 지 2주가 지난 후였다. 공군은 또 사건에 대한 국방부 보고에서도 이 중사가 성폭력 피해자이며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이 기간 동안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받게 된 것”이라며 “군 수사가 얼마나 부실하고 은폐된 채 이뤄지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사건의 전말…‘은폐, 축소, 회유’

사건 발생 당시 차량 안에는 두 중사 외에도 운전을 하던 후배 부사관이 있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그는 군사경찰 조사에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이 의원실은 전했다. 그러나 유족들이 피해자가 가해자의 손을 뿌리치고 차량에서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어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족은 이 중사가 피해를 당한 뒤 차량에서 내렸고, 즉시 저녁자리에 함께 있던 상사에게 전화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군 군사경찰은 이 중사가 하루 뒤인 3일 오전 상사에게 알렸고, 준위에게까지 보고가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후 같은 날 저녁에야 준위가 대대장에게 보고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회유 정황도 포착된다. 준위는 성추행 피해 보고를 받고도 이 중사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이 의원은 “공군 군사경찰이 준위가 대대장에게 늑장 보고를 한 것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부실 수사”라고 지적했다.

상담만 수십회…“죽고 싶다” 문자도

이 중사는 피해 이후 20비행단 소속 민간인 성 고충 전문상담관으로부터 22회의 상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상담 중이던 지난 4월 15일 이 중사는 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2주간 6회가량 지역의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 및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성폭력상담소는 “자살징후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는 진단과 함께 상담을 마쳤다. 이후 군에서의 상담은 없었다.

이 중사는 5월 3일 청원 휴가 이후 2주간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자가격리를 했다. 격리가 끝난 뒤 20비행단에서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 조치가 이뤄졌고, 나흘 만인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이모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3시간’도 안 걸린 영장심사…구속은 사건 발생 ‘석 달’ 뒤

공군 검찰은 조사를 계속 미뤄오다 사건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지난달 31일에서야 바쁘게 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군의 안일한 대응과 상급자들의 사건 무마 시도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고조되자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일 오후 7시 사건 수사 주체를 공군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관할 것을 지시했다.

하루 뒤인 2일 국방부 군사보통법원은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장 중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국방부 검찰단의 구속영장 청구와 피의자 신병 확보, 법원의 영장 발부가 같은 날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특히 오후 8시 영장실질심사 시작 후 불과 2시간 30분 만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장 중사는 국방부 근무지원단 미결수용실에 수감됐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