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를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사건과 관련해 군 내부의 엉터리 수사와 부실 대응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피해자는 자신의 음성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도 증거로 제출했으나 부대 측에선 대기발령 등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어떤 조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일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에 따르면 피해자인 이모 중사는 지난 3월 5일 군사경찰에서 받은 최초 피해자 조사에서 선임 부사관인 장모 중사가 차 안에서 자신의 신체를 만지고, 본인의 특정 신체 부위를 강제로 만지게 하는 등 강제추행했다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유족은 이 중사가 성추행을 못참고 차량에서 내려 즉시 저녁 자리에 함께 있던 상사에게 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공군 군사경찰은 하루 뒤인 3일 오전 상사에게 알려 준위에게까지 보고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성추행 피해 보고를 받고도 대대장에게 10시간 이상 시차를 두고 보고가 이뤄진 배경도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유족 측 변호인은 이 중사가 탑승했던 차량의 블랙박스도 직접 확보해 군사경찰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블랙박스에는 ‘하지 마시라’ ‘앞으로 저를 어떻게 보려고 이러시냐’ 등 절박한 피해자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녹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장 중사의 첫 가해자 조사는 같은 달 15일 이뤄졌다. 당시 공군 군사경찰은 장 중사를 불구속 상태로 수사한 것은 물론, 휴대전화조차 압수하지 않았다.
장 중사는 일부 혐의만 시인한 채 피해자가 주장한 구체적 피해진술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이후 장 중사가 다른 부대로 파견된 건 성추행 2주일이 지난 3월 17일이었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이 의원은 “공군은 최소한 피해자 조사를 실시한 3월 5일에 가해자와 피해자 간 분리 조치를 해야 했음에도 2주일 동안이나 분리 조치를 하지 않아 피해자가 가해자 등으로부터 2차 가해를 받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단이 증거물로 확보한 피해자의 휴대전화에는 회유 정황을 입증할 만한 전화통화 녹음 내용을 비롯해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 등도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 당시 차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운전을 하던 후배 부사관(하사)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부사관은 군사경찰 조사에서 “(성추행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이 탑승한 차량이 SUV 차량이었고, 피해자가 성추행을 못참고 뿌리치고 차량에서 내렸다고 진술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 중사는 피해 이후 20비행단 소속 민간인 성고충 전문상담관으로부터 22회의 상담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상담 중이던 지난 4월 15일 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이후 2주간 6회가량 지역의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 및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같은 달 4월 30일 성폭력상담소는 “자살징후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는 진단과 함께 상담을 마쳤다.
이 중사는 5월 3일 청원휴가가 끝났지만 2주간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자가격리를 했다. 격리가 끝난 뒤 20비행단에서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 조치가 이뤄졌고, 나흘 만인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러나 청원휴가가 종료된 3일부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같은 달 21일까지 약 2주간 민간상담만 2회 이뤄졌을 뿐, 군 상담관을 통한 상담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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