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남성 공무원들이 내부 게시판에서 성평등 생활수칙 안내 문자에 불만을 쏟아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아무리 내부 게시판이라고 해도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공공연한 성차별적 발언과 인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공직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을 점검하고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여성권익담당관은 지난달 26일 전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생활 수칙’을 안내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문자는 “안녕하세요,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5가지 생활 수칙을 안내드립니다. 건강한 조직 문화를 위한 변화의 한걸음, 함께 실천해주세요”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구체적인 수칙을 소개했다.
수칙은 ‘외모, 신체에 대한 비유나 평가 NO’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 NO’ ‘성차별적 농담 NO’ ‘지위를 이용한 사적 만남, 사적 업무 지시 NO’ ‘성별에 따른 업무 분장 NO’ 등 조직 내 성차별적 언행과 관행에 대한 인식 개선을 꾀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해당 문자를 발송한 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울시 직원들이 이용하는 내부 게시판에는 문자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들은 “아침부터 문자 보고 김샜다. 이런 문자는 여성한테만 보내라” “정책 홍보를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 아니냐” 등 불만을 드러냈다.
문자를 발송한 여성정책담당관이 소속된 ‘여성가족정책실’에 대해 “담당 부서 이름부터 평등하지 않다. 남성가족정책실은 왜 없느냐”면서 “페미들 논리에 엮여서 여성이란 이름 붙여야 하냐”고 항의하는 글도 있었다.
비상발령시스템으로 문자를 보낸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나왔다. 한 직원은 “비상발령시스템의 구축 목적과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며 “이런 정책홍보성 문자를 수신하는데 동의한 적 없다”고 했다.
여성권익담당관은 답글을 통해 “‘성폭력 제로(Zero) 서울’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항”이라며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예방과 근절을 위해서는 사후적인 조치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예방이 필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창원대 철학과 윤김지영 교수는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상식적인 내용의 문자임에도 논란이 된 건 수칙 자체보다 발송자인 ‘여성권익담당관’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초부터 이삼십대 남성들의 역차별 담론이 확산하면서 ‘여성권익’이 남성에 대한 차별을 조장한다는 편견을 바탕으로 문자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여성 공무원은 내부 게시판을 통해 논란에 반박하는 글을 남겼다.
한 여성 직원은 ‘이 게시판만 봐도 여성차별과 관련한 시정 업무와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제목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그는 “요즘 남성이 차별받지 여성이 무슨 차별을 받느냐며 소란 피우는 사람들이 인터넷 세상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직장(서울시)에도 넘쳐난다”며 “여성 차별을 부정하다 못해 같은 직장 동료(여성가족정책실) 업무까지 폄하하는 글로 스트레스 많으실 텐데 기운내시라”고 했다. 해당 글에는 “글쓴이 같은 페미들 싸XX로 딱 10대만 때리고 싶다”는 댓글이 달렸다.
다른 여성 공무원은 “남성은 성별이 남자라는 이유로 채용에서 엄청난 우대를 받고 있다”라며 “피해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말해보라 하지 말고, 본인들의 의도했든 안했든 차별이 있고 특정 성별이 괴로워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서울시 게시판에 젠더 이슈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 측면에서 부적절한 글이 올라온 건 처음이 아니다. 고(故) 박원순 전 시장 성희롱 사건과 4·7 재보궐 선거 이후 게시판에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주장하는 게시글이 빈번히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시장이 제시한 ‘성폭력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에 대해 “성폭력 무고도 원스트라이크아웃해야”라고 하는가 하면 “여성의 범죄피해가 더 많은 건 성차별과 관계없다” “독박육아는 조직문화 때문이 아니라 남편 잘못 만난 탓” 등의 의견도 제기됐다.
또 서울시의 성인지예산·성별영향평가·성인지교육에 대해 “미쳐 돌아간다” “헛짓거리” “쓰잘데기없는” 등의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해 여성정책담당관에 의해 삭제요청된 게시글도 있었다.
윤김지영 교수는 이런 주장들이 일반 시민이 아니라 현직 공무원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성평등 인식을 견인해야 하는 이들이 성차별적 언행을 서슴지 않는 건 공무원으로서의 품위 유지 의무보다 2030남성의로서의 소속감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성차별적인 가치관에 대해 공무원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상황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남성 역차별 주장 등이 공직사회로 번지는 현상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일부 직원들의 생각일 뿐이며, 대다수 조직원이 동조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일부 혐오를 조장하고 성차별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발언에 대해서는 제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인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