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대기업들이 빠르게 ‘백신휴가’를 도입하고 있다. 반면 자금·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은 도입에 난색을 보이는 상황이다. 정부가 정책지원 없이 유급휴가를 ‘권고’ 사항으로 남겨둘 때부터 백신휴가 양극화가 예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백신 접종 이후 이상반응이 잇따르자 지난 3월 ‘코로나19 백신 이상반응 휴가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의사 소견서 없이도 최대 이틀간 병가나 유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다만 민간 기업엔 의무 사항이 아니다.
삼성전자, LG그룹 등 대기업들은 백신휴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노동조합이 백신휴가를 요구한 지 하루만에 접종 당일과 접종 후 최대 이틀까지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그룹, CJ그룹 등 대면 접촉이 많은 유통업계도 백신휴가 도입에 적극적이다. 대기업에 이어 야놀자, 유한킴벌리 등 스타트업과 중견기업으로도 도입이 확산하고 있다.
반면 현재 중소기업에서 백신휴가를 도입한다고 밝힌 곳은 종합 IT 서비스 전문기업 ‘유플러스아이티’ 1곳뿐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백신휴가를 도입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중소기업에선 유급휴가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A씨(32)는 오는 11일 얀센 백신을 맞을 계획이다. 혹시 이상반응이 생기면 주말에 쉴 수 있도록 금요일로 신청했다. A씨는 “정부에서 백신 유급휴가를 권고하고 있는지도 몰랐다”며 “회사에선 아무런 논의도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운수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B씨(49)는 “최저임금도 오르고 주휴수당도 줘야 하는 상황에서 백신휴가까지 도입하기엔 부담이 크다”며 “현장직의 경우 인원이 타이트하게 맞춰져있기 때문에 한 명이 빠지면 대체 인력이 들어가야 해 비용이 이중으로 든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근무 환경에 따라 백신휴가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백신휴가 도입 필요성에 대해선 중소기업도 공감하고 있지만 결국은 비용 문제에 가로막힌다”며 “중소기업에 한해서라도 비용을 일부 보존해준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지난달 백신 유급휴가 비용을 지원하는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가 걸림돌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백신 접종자 모두에게 소급 지원할 경우 연간 최대 6조2000억원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