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성추행 가해자, A부사관 지나가면 ‘꺼져’라고”

입력 2021-06-02 13:52 수정 2021-06-02 14:08
성추행 피해 여성 부사관 유가족 면담하는 민주당 송영길 대표. 연합뉴스

결혼을 앞둔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을 당한 뒤 피해신고를 하고도 상관으로부터 합의 종용과 회유를 당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A부사관의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송 대표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사망한 A부사관의 유가족을 만났다. 그는 “너무나 황망하고 가슴이 아파서 모든 국민이, 저도 딸까진 아빠 입장에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A씨의 어머니는 “우리 딸 목소리 못 들은 지 며칠인지 모르겠다”며 “딸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동안 있던 동영상 계속 보는데 깔깔깔 웃었던 그 모습만 자꾸 기억이 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딸이 평소에 그렇게 힘든 이야길 하는 애가 아닌데 최근에 집에 와서는 암시를 했다”며 “그냥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면서 자살방지센터에 전화했고 메일로 장문의 글을 써서 상담관한테도 보내면서 자기 나름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던 아이”라고 설명했다.

A씨 어머니는 또 “(딸이) 가해자가 자기가 지나가면 ‘꺼져’라고 하고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하면 (성과물을) 빼앗아가서 자기가 한 듯이 상부에 보고했다고 하더라”며 “엄마인 저는 ‘사회생활 하니 그런 사람 있더라, 견디자’고만 말했는데 세상살이가, 사회생활이 그렇다고 말한 못난 엄마”라고 자책했다.

송 대표는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서욱 국방부 장관, 이성용 공군참모총장과 통화했는데 이 사건은 공군이 맡으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며 “서 장관이 처음에는 안이하게 생각해서 공군 경찰에 무엇인가를 추가할 생각이었는데 (저는) 무조건 이것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국방부 감찰단이 사건을 맡게 된 것이) 잘 된 것 같다”고 했다.

MBC ‘뉴스데스크’ 캡처

이날 서 장관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오후 7시부로 해당 사건을 공군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관해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유가족과 1시간가량 면담한 송 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성추행 사건 이후 처리 과정이 어떻게 됐길래 3월 2일에 발생한 사건으로 5월 22일에 비극적 결말이 나게 됐는지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 소속의) 공군 20전투비행단은 여러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저희 당 국방위와 여성가족위원들이 여성 부사관 내무반 상황, 숙소 관리, 상황 처리 매뉴얼 등을 철저히 점검해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을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송 대표는 ‘사건의 책임을 서 장관이나 이성용 참모총장이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지금 말할 때가 아니고, 가해자와 회식 자리에 피해자를 부른 상사 등 실질적인 책임의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이후 (책임) 문제를 판단할 일”이라고 에둘러 답했다.

그는 “(사건이) 보고된 후 처리 과정, 피해자 보호조치 등이 안 돼 2차 가해가 발생하고 비극적 사태를 막지 못했는지, 이 시스템의 문제점을 정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충남 서산 소재 공군부대 소속 A부사관은 지난 3월 선임인 B중사에 의해 억지로 저녁 회식에 불려 나간 뒤 숙소로 돌아오는 차량 뒷자리에서 강제추행을 당했다. A부사관은 이러한 피해사실을 정식으로 상관에게 신고했지만, 오히려 상관들은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느냐”며 B중사와의 합의를 종용하거나 “살면서 한번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회유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사건 발생 당일부터 상관에게 알렸지만, 즉각적인 가해·피해자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피해자 보호 매뉴얼의 즉각적 가동 대신 부대 상관들의 조직적 회유가 이뤄졌으며, 같은 군인이던 A부사관의 남자친구에게까지 연락해 설득해 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A부사관은 두 달여의 청원휴가 동안 부대 성고충 상담관 등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며 이메일과 문자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달 18일 청원휴가를 마친 뒤 전속한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출근했지만, 나흘 만인 22일 오전 부대 관사에서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특히 발견 하루 전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마쳤으나 당일 저녁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며, 자신의 ‘마지막’ 모습도 휴대전화로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