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겪는 일” 회유도…공군부사관 죽음 내몬 사건들

입력 2021-06-02 07:02 수정 2021-06-02 09:47
MBC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이 상관들의 조직적인 회유와 압박 외에도 가해자의 2차 가해성 발언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공군 측에서 선임해준 국선변호인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1일 MBC에 따르면 지난 3월 초 차 안에서 A중사를 성추행한 B중사는 A중사가 차에서 내린 뒤에도 2㎞를 따라가며 위협했다. 이후 “용서해주지 않으면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며 협박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A중사가 피해를 신고한 뒤에도 B중사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A중사의 아버지는 “(B중사가) ‘아버지 사업이나 물려받으면 돼’라고 말한 것을 팀원들을 통해 우리 딸이 들었다”고 했다.

성추행 사건의 발단이 된 회식을 주도한 C준위는 A중사를 불러내 “살면서 한 번쯤은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회식에 갔던 사람들이 피해받는다. 가해자가 곧 전역할 테니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회유를 시도했다.

A중사는 자신의 약혼자까지 합의를 종용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이 같은 2차 피해 사실을 대대장에게 보고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A중사가 부대 전속 요청을 했지만 ‘정기인사 때까지 기다리면 원하는 곳에 올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A중사가 지난 4월 15일 성고충상담관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 뒤에야 공군본부에 보고돼 즉시 전출이 결정됐다.

그러나 부대를 옮긴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해당 부대 대대장은 A중사에게 전화해 사전 지시도 없었던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질책했고, 예정된 날짜보다 이틀 먼저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A중사는 출근 첫날부터 혼자 야근을 하기도 했다. 성추행 피해 신고 후 주어진 2주 휴가 동안 한 일도 날짜별, 시간별로 적어내라고 요구했다.

A중사를 걱정한 약혼자는 같은 부대로 전출을 신청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서둘렀다고 한다. 이에 A중사가 혼인신고를 위해 반차를 내겠다고 하자 상관이 대대장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A중사의 어머니는 “‘너는 휴가를 이런 식으로 내냐. 너희 부대에서는 이런 식으로 배웠어?’라고 말했다고 한다”며 “딸이 (대대장에게) 엄청 질책을 받았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공군본부 검찰부에서 선임해준 국선변호인도 이 사건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A중사의 질문에 답변이 늦거나 아예 답을 하지 않았고, 피해자 진술 조사 날짜가 정해진 지 보름이 지난 뒤에야 불참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A중사가 대리인이라도 보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한참 동안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군검찰이 사건 발생 석 달 뒤에야 가해자 조사를 하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A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도 가해자 조사는 예정보다 나흘 정도 앞당겨졌을 뿐이었다. 유족이 구속 수사를 요청했으나 검사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 사유가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결국 공군을 믿을 수 없게 된 유족은 새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대응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새 변호사가 국선변호인에게 고소장과 진술조서 등 기본적인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해당 국선변호인은 자료가 없다며 일절 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을 군 법무관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경우 한 사무실에 검사와 변호사가 같이 있는 거다. 이런 경우 제대로 된 조력을 받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