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백신접종 무료인데 피하는 이유…“영수증 날아올까 봐”

입력 2021-06-02 04:47 수정 2021-06-02 04:53
미국 백신접종, 4월 16일 정점 찍고 감소 추세
접종비용 무료…그러나 비용 청구될까봐 ‘기피’
코로나 검사 비용도 무료라고 했다가 결국 지불
의료시스템 불신 단면…백신 부작용 우려도 여전
“백신에 대한 우려, 한 가지 이유가 아니다”

미국 뉴욕의 할렘 지역에 있는 한 요양시설에서 지난 1월 15일 흑인 노인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AP뉴시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무료다.

그러나 일부 미국인들이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백신을 맞은 이후 예상치 못한 비용이 청구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깊은 불신이 백신 접종 확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현재 미국에서 백신을 한 차례 이상 접종 받은 사람은 1억 6770만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50.5%다. 두 차례 백신을 맞아 접종이 완료된 사람은 1억 3510만명으로, 40.7%다.

다만, 지난 4월 16일 하루에 395만 3883명이 백신 접종을 받으며 최고점을 찍은 이후 백신 접종자 수가 줄고 있는 추세다.

이 이유 중 하나가 하지 않아도 될 ‘돈 걱정’이다. 과거 의료기관에서 검진 또는 치료를 받은 뒤 과도하게 높거나 예상치 못한 비용을 청구 받았던 불쾌한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이 백신 접종이 공짜인 상황에서도 이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카이저 가족재단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신을 아직 접종받지 않은 미국 성인의 3분의 1 정도가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의료보험이 백신에 적용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답했다고 NYT는 전했다.

특히 비용 걱정 때문에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비율은 흑인과 히스패닉 계층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카이저 가족재단의 리즈 하멜 연구조사국장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이 무료라는 사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다”고 NYT에 말했다.

NYT는 높은 의료비용으로 인해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신용카드 채무나 학자금 융자 등 다른 빚을 떠안고 있는 사람들보다 꼭 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가 더 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권의 꼼꼼하지 못한 일처리와 부도덕한 일부 의료진은 코로나19 의료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코로나19 검사 비용이 무료라고 선전했다가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검사 비용을 냈기 때문이다. 한 번 속았기 때문에 또 속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진 것이다.

미국 의회는 코로나19 검사 비용을 무료로 만들기 위해 조치를 마련했다. 미 의회는 의료보험 회사들에게 코로나19 검사 비용을 피보험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금지시켰다. 또 보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기금을 만들어 의료진들이 이들로부터 받지 못한 검사 비용을 기금을 통해 대신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NYT는 코로나19 검사 비용으로 1000달러(110만원) 이상이 나온 사례들도 있다고 보도했다. 의료진들이 연방정부가 마련한 기금을 활용하는 대신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 청구했기 때문이다.

뉴욕주에서 주유소 계산원으로 일하는 폴 모서는 “우리는 코로나19 검사 비용이 무료라고 들었는데, 내 친구들이 검사를 받고 와서 150달러(16만원) 비용이 청구된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나느 백신 접종이 중요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접종에 대한 절박감은 없다”고 NYT에 말했다.

하지만 백신 접종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 의회는 백신 접종에 대해선 더욱 까다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백신 접종 기관이 되기 위해선 의료진과 약국들은 환자들에게 청구서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반드시 서명해야 한다.

그러나 일리노이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 콜로라도주에선 실수로 백신 접종 비용이 발송된 사례가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이 모든 사례들에서 비용 청구 요구는 철회됐으며, 실수에 대해 사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백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도 여전하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지난달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들은 백신 비용에 대한 걱정보다 백신 부작용을 더 우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NYT는 보도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백신 부작용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저소득층은 혹시나 비용이 청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카이저 가족재단의 하멜 국장은 “많은 사람들이 백신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다”라면서 “이들은 많은 것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