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터진 검사라는 핀잔을 받기도 하고 악질 검사라는 수군거림도 경험했습니다. 수구 꼴통 검사와 빨갱이 검사 소리도 각각 들어 봤습니다.”
‘공안통’ 오인서(55·사법연수원 23기) 수원고검장이 1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사직인사에는 ‘모두가 만족하는 사건 처리는 없다’는 씁쓸한 검사로서의 숙명이 담겼다. 20년 넘게 주임검사·결재권자로서 많은 사건을 처리해온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 검사로서의 제 정체성이 무엇이었는지 반추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사안을 보는 입장에 따라 검사 개인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내용이 각양각색”이라고 했고, “칭찬과 비난이 손바닥 뒤집듯 한다”고도 했다.
오 고검장은 “공직자의 숙명이자 감내해야 할 몫이려니 하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과거 어느 선배로부터 “검사는 책상에서 복을 짓는 직업”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억울한 이의 원을 풀고 잘못한 이에게 벌을 구하는 역할이라는 말이었다. 오 고검장은 “하지만 지나보면 복과 화가 종잇장의 앞뒷면만큼이나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는 “선업이 아니라 악업을 쌓아 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처한 곳에 따라 검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토로는 최근 여러 개혁 방안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오 고검장은 “과거의 업무상 잘못과 일탈, 시대에 뒤떨어진 법제와 조직문화 등을 개선하는 데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도 “진단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처방에 교각살우(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하는 요소는 없는지 살피고 또 살펴봐 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안착 과도기인 시점에 형사부의 수사 개시 요건 등을 놓고 또다시 제도 변경이 추진되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오 고검장은 어느덧 검찰 안으로도 스며든 진영논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남겼다. 그는 “사단과 라인은 실체가 불분명한 분열의 용어이며, 안팎의 편 가르기는 냉소와 분노, 무기력을 초래할 뿐”이라며 “‘검찰’이란 이름으로 합심해서 일하길 염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말과 글이 부딪히고 불신과 대립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모두가 되새기면 좋겠다”며 ‘3독’을 말했다. 독선(獨善), 독점(獨占), 독설(毒舌)을 피하자는 당부였다.
오 고검장은 지난 31일 “소신을 지키며 책임감 있게 일해온 대다수 동료, 후배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물러나고자 한다”며 법무부에 사직서를 냈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휘한 수원지검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도 외부에서 각양각색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해 기소가 필요하다는 의견임을 대검찰청에 밝힌 상태다. 오 고검장을 아는 한 후배 검사는 “의미 있는 사의 표명이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