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우량기업을 합병할 목적으로 발행하는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주가 과열 우려 속에서도 ‘상한가 계주’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우선주가 돌아가며 연일 상한가를 찍는 등 이상 급등을 지속했던 것과 흡사한 양상으로 시세 조작 가능성이 제기된다.
1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거래된 스팩 50개 중 거의 절반인 22개가 전일 대비 10% 넘게 급락했다. 이 중 6개는 하한가를 비롯해 20% 넘게 주저앉았다.
전날 상한가를 기록했던 하이제6호스팩은 이날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전날 스팩은 전체의 약 4분의 1인 14개가 상한가를 찍으며 과열 양상을 보였다. 그 중 9개가 하루 만인 10% 넘게 급락했다. 하한가를 포함해 30% 가까이 급락한 종목이 5개다.
전날 하락으로 마감한 스팩이 2개였던 것과 달리 이날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46개가 하락했다. ‘묻지 마’ 급등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꺾인 탓으로 보인다.
이런 폭락장에서도 ‘스팩 상한가 돌리기’는 끝나지 않은 모습이다. 이날 4개에 불과한 상승 종목 중 3개가 20% 넘게 뛰었다. SK5호스팩은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전날 상한가 종목인 SK4호, 6호스팩은 이날도 각각 22.6%, 24.3% 급등했다.
보통 스팩은 합병할 기업이 정해진 뒤 기대감에 주가가 오르지만 최근 급등한 스팩 대부분은 합병 대상도 정해지지 않은 종목이다. 이번 스팩 광풍의 첫 주자인 삼성스팩4호는 지난 28일 주가 급등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공시 요구에 “딱히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삼성스팩4호는 코스닥 상장 다음날인 지난 22일부터 31일까지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약 380% 상승했다. 26일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된 뒤에도 급등을 거듭해 결국 이날 하루 거래정지를 당했다.
스팩은 유통물량이 많지 않고 기준가격도 몇 천원으로 싼 편이라 자금 수급에 따라 시세 변동폭이 큰 종목이다. 단기간에 주가를 띄운 뒤 이에 따라붙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물량을 떠넘기고 시세 차익을 챙기려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미끼인 셈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먼저 스팩 과열을 겪은 미국에서는 대형 헤지펀드 마샬 웨이스의 공동창업자 폴 마샬이 거품을 경고한 바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4월 스팩 과열 차단 차원에서 회계지침을 변경했다. 이에 올해 3월 109건이던 스팩 상장이 4월 10건으로 줄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스팩이 소액 투자자들을 적절히 보호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새로운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고 예고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