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노동당 서열 2위에 해당되는 ‘제1비서’ 자리를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넘버 2’는 두지 않는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2인자 자리를 공식화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위 간부들에게 국정운영 권한을 일부 이양하는 이른바 ‘위임 통치’의 연장선상으로,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이 자리를 꿰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일 대북 소식통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당 규약을 개정하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제1비서, 비서를 선거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김 위원장이 겸하고 있는 당 서열 1위 ‘총비서’ 바로 아래 자리를 공식적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제1비서 직함은 김 위원장이 2012년부터 제7차 당 대회가 있었던 2016년까지 사용한 직함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당 규약에는 제1비서가 총비서인 김 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당 관련 회의를 주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짊어진 통치 부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김정은 시대 2인자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공식을 스스로 깨뜨린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집권한 이래 대소사를 일일이 챙기는 데 따른 심리적 압박과 피로감을 완화하기 위해 권한을 분산했다는 것이다. 삼중고(코로나19·대북제재·자연재해)로 인해 통치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됐을 가능성이 크다. 집권 10년차에 들어서면서 권력 장악 작업이 완전히 끝났다는 자신감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일각에선 제1비서 자리를 신설한 것은 후계 작업과 연관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아직 김 위원장이 3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을 떨어진다.
7명의 당 비서 가운데 제1비서는 김 위원장의 그림자 조용원 조직비서가 맡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조용원은 일명 로열패밀리를 제외한 당 고위 인사로서 유일하게 올해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4월15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김 위원장 대신 당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등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대에 집권한 김 위원장이 빠르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당 조직지도부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당 관련 업무부터 인사까지 모두 꿰뚫고 있던 조용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 등 ‘백두혈통’이 아닌 사람들 중 자신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조용원에게 제1비서 자리를 맡겼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