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난파선 보물들 900년 만에 잠 깨우다

입력 2021-06-01 17:14 수정 2021-06-01 17:19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팀원들이 지난 17일 제주 한경면 신창리 해역에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1983년 금제 유물이 처음 발견된 이 해역에선 2019년 첫 발굴조사 당시 중국 남송시대 도자기와 함께 ‘삼가 봉한다’는 뜻의 ‘謹封(근봉)’이란 글자가 새겨진 목제 인장이 발굴됐다.

제주 앞바다엔 보물이 숨어있다. 약 900년 전 중국 남송 시대 도자기를 싣고 일본을 향해 가다 좌초된 배에 실려 있던 유물들이다. 지난 17일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 수중발굴 조사원들이 보물 탐사를 위해 검푸른 바다에 몸을 던졌다. 주먹 두어 개 크기 지름 호스로 바닥 모래를 빨아들이자 긴 세월 바다에 잠들어있던 보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난파선의 비극이 역사적 문화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제주 한경면 신창리 해저에서 발견된 도자기 위에 마커가 놓여 있다. 수중유물은 바로 건져 올리지 않고 발견 위치 등을 기록하기 위해 영상촬영부터 한다.

고성수 수중발굴과 주무관은 “서해 바닷속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가며 작업해야 하고, 제주 바다는 수심이 3m에 불과하지만, 너울이 심해서 숙련자도 멀미한다”고 말했다.

고성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주무관이 잠수복을 착용하고 있다.

신창리 발굴팀은 표면공기공급호스가 달린 잠수복을 입는다. 산소통보다 불편해도 더 오래 잠수할 수 있다. 목재 선박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세월을 견뎌낸 도자기와 금속공예품 300여점이 지금까지 발굴됐다. 발견된 유물은 바로 건져 올리지 않는다. 위치를 기록하고 꼼꼼하게 영상 자료를 남긴다. 이후 조심스럽게 건져져 해양유물연구과로 보내진다.

전남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남경민 연구원이 지난 26일 신창리 해역에서 발굴한 도자기의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 X-레이를 이용해 금속 유물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해양유물연구과에서 유물은 ①처리 전 조사 ②이물질 제거 ③탈염 ④세척 ⑤건조 ⑥접합 및 복원의 여섯 단계를 거친다. 해양유물 특성상 탈염 처리가 가장 중요하다. 도자기의 경우 최소 4개월 이상 민물에 넣어 염분을 빼야 한다. 염분이 제대로 빠지지 않으면 건조과정에서 소금 알갱이로 인해 도자기가 깨질 수 있다. 목재의 경우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바닷물이 빠진 공간을 약품처리 된 민물을 투입해 강도를 다시 복원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 신창리 도자기의 탈염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26일 전남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송지선 해양유물연구과 학예연구원이 금속유믈의 성분분석을 하고 있다.

보존처리를 마친 유물은 비로소 전시장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목포와 태안 두 곳에 전시장을 운영한다. 목포 전시장의 경우 한국 최초이자 최대의 해양발굴문화재인 신안선 유물을 비롯해 총 7천7백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지난 26일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십이동파도선’과 ‘완도선’에서 발굴된 해남 청자를 보고 있다.

최유리 목포해양유물전시관 학예연구사는 “난파선은 그 당시에는 비극이지만 문화재로 남아 시대상을 엿볼 수 있으며 나아가 역사와 의미를 살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제주·목포=사진·글 김지훈 기자 d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