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수사팀 인사 불이익 없어야 ‘검찰개혁’ 설득력”

입력 2021-06-01 16:11
배성범 법무연수원장이 2019년 10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할 때 국정감사에 임하던 모습. 윤성호 기자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사건에 최선을 다한 검사들이 특정 수사팀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인사 등에 부당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배성범(59·사법연수원 23기) 법무연수원장이 27년여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며 권력형 비리를 수사해온 검사들의 좌천 현실에 대해 1일 쓴소리를 남겼다.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사직인사를 통해서였다. 그는 “검사는 중대한 의혹과 혐의가 제기되면 대상이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진실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배 원장은 “제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근무할 때나 그 전후에도 많은 뛰어난 후배 검사님들이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한 사안의 수사, 공판에 임해야 하는 부담과 고통을 짊어졌다”고 했다. 그는 2019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취임했을 때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이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비리 사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이 사건들의 수사에 관여한 검찰 간부 다수는 지난해 지방으로 전보됐다. 배 원장도 6개월 만에 서울중앙지검을 떠났다.

배 원장은 “검찰개혁이 단지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내외의 공감과 설득력을 갖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국민의 질책은 ‘검찰이 인권과 공정을 지켜 제대로 수사하라는 것’이라고 본다”고도 했다. 결국 권력자를 수사·기소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준다면 검찰개혁의 본래 의미도 퇴색될 것이라는 쓴소리였다.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들이 검찰의 범죄 대응 역량을 오히려 약화시켰다고도 했다. 배 원장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건 등 사회적 공분을 야기하는 부패 사건, 대형 경제범죄에 대한 검찰의 대응에 공백이 초래되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 공정과 정의가 바로 서는데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에 따라 크게 축소됐고, 그 결과 올 들어 불거진 LH 투기 사태에서 검찰은 전면에 나서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최근 법무부가 추진한 검찰 조직개편안에 대해서도 “형사부 활성화, 검찰 전문역량 강화 기조와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배 원장은 “강력부, 조사부, 외사부 등 전문수사부서가 수십년간 힘들여 축적해온 전문수사 역량은 검찰뿐 아니라 우리 사법시스템과 국가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라며 “전문 수사부서들을 일거에 폐지하는 상황에서 검찰의 전문 역량을 강화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배 원장은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이 일일이 개별 사건의 수사개시를 승인하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의구심을 야기하고, 일선 청과 검사들의 수사 자율성, 독립성을 심하게 손상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배 원장은 “검사는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해소하고 사회적 공정과 정의에 기여할 수 있는 귀한 직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고 소회를 남겼다. 그러면서 “검찰이 그동안 겪어온 신뢰의 위기와 국민들의 뼈아픈 질타에 대해서는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강력통’으로 통하는 그는 검찰 후배들로부터 ‘소신을 갖고 일한다’는 평을 들었다. 그와 함께 검찰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검찰이 정권과 가장 대립했던 시기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일했던 인물”이라며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서 윤 전 총장의 역할을 많이 기억하지만, 서울중앙지검장의 뜻이 달랐다면 윤 전 총장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