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130승 이상을 쌓고 최고라는 찬사를 받은 투수에게도 세계의 정상과 같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안착하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1988년생 동갑내기 좌완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이 한날한시에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동반 패전을 당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즌’에 2년차로 넘어온 김광현과 이제 막 데뷔한 양현종 모두 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김광현은 31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가진 2021시즌 메이저리그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5이닝 동안 9피안타(1피홈런) 1볼넷 4실점을 기록하고 2-4로 뒤처진 6회말 시작과 동시에 불펜 타일러 웹과 교체됐다. 그 이후 추가점 없이 5실점한 팀의 2대 9 완패로 김광현은 패전투수가 됐다. 시즌 3패(1승)를 당했고, 평균자책점은 3.65로 상승했다.
늘어나는 패전보다 뼈아픈 건 연패다. 김광현은 지난 17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원정(3⅓이닝 4실점)부터 3경기 연속으로 패전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라 팀당 60경기씩으로 축소된 지난해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부터 팀당 162경기씩으로 복구된 올해 초반 5차례 등판까지 무패 행진을 펼쳐왔던 김광현에게 반전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날 상대는 내셔널리그 최약체로 평가되는 애리조나였다. 내셔널리그 15개 팀 중 유일하게 20승에 도달하지 못한 팀이다. 팀 평균자책점 4.93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28위에 있는 마운드는 붕괴 직전인데, 타율 3할대를 기록하는 타자를 한 명도 보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애리조나는 김광현을 13연패 탈출의 제물로 삼았다. 2번 타자 케텔 마르테가 유독 김광현을 괴롭혔다. 김광현은 3회말 솔로 홈런을 허용한 마르테를 4회말 2사 만루 위기에서 다시 만났다. 풀카운트 승부에서 시속 82.2마일(132㎞)짜리 슬라이더로 던진 9구째 승부구를 얻어맞아 2타점 적시타를 허용했다.
김광현은 경기를 마친 뒤 마르테와 승부를 패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애리조나와 4연전 내내 마르테의 활약이 좋아 주의가 필요했다. 그 앞에 주자를 쌓아둔 게 패인”이라며 “몰리는 공이 많았다. 안타도 많이 허용했다”고 자평했다.
김광현의 경기 시작 시간은 오전 5시10분. 같은 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T모바일파크에서는 양현종이 시애틀 매리너스 원정경기를 선발로 출발했다. 하지만 3이닝 동안 5피안타 1볼넷 3실점(2자책점)하고 0-3으로 뒤처진 4회말 드마커스 에번스와 교체돼 김광현보다 먼저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결국 동점을 만들지 못한 팀의 2대 4 패배로 양현종의 첫 승 사냥은 이번에도 무산됐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모두 2007년 한국프로야구 KBO리그에 고졸 신인으로 데뷔해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으로 성장해왔다. 김광현은 양현종보다 1년 빠른 메이저리그 진출과 2017년 부상으로 12시즌을 소화한 KBO리그에서 136승을 거뒀다. 양현종은 김광현보다 두 시즌을 더 보낸 한국에서 147승을 쌓고 ‘대투수’로 불렸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마운드 안착은 이들에게도 여전한 도전으로 남아 있다. 양현종은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몰리는 자신의 제구를 지적하며 “빅리그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