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신념’ 대체역 허용 병역거부자 1심 무죄… 복무는 연기

입력 2021-05-31 15:41

종교가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체복무 대상자로 인정된 오수환(31)씨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유·무죄를 판단함에 있어 재판부가 개정 전 법령의 위헌적 요소를 문제 삼아 소급 적용을 근거로 든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씨는 국방부에서 대체역을 허용받고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이 항소하면서 입영이 연기됐다.

3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남신향 판사는 지난 2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개정 전 병역법에 따라 기소되고 재판받는 피고인에게는 병역법 제88조 1항에서 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며 개정 전 법령에 위헌적 요소가 있어 예외적으로 개정된 법령의 소급 적용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병역법 제5조 1항이 대체복무 제도를 규정하지 않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19년 12월 대체복무제가 입법됐고, 대체역법은 지난해 1월 시행됐다. 그러나 오씨가 현역병입영통지서를 전달받고도 입영하지 않았던 시점은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기 두 달 전인 2018년 4월이었다.

1년이 넘게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던 오씨는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출범한 지 1달 뒤인 지난해 7월 병무청에 대체역 편입 신청을 했고, 이와 무관하게 검찰은 같은 해 9월 오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사이 병무청은 지난 1월 오씨의 대체역 편입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오씨는 평화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로는 처음으로 대체복무를 인정받게 됐으나, 무죄를 확정받기 전에는 대체복무 대상자로 입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도 검찰이 항소하면서 오씨의 입영은 다시 연기됐다. 검찰은 1심에서 오씨가 여러 차례 현역병 지원을 하고도 철회하고 다시 신청한 점 등을 지적하며 양심의 진정성에 대한 질문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개정 전 법령의 위헌성과 함께 소급효를 언급한 만큼 항소심에서는 이에 따른 법리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과거에 있었던 위법 행위가 무죄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또 오씨가 주장하는 양심의 진정성도 여전히 항소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심 재판부는 오씨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정확히 어떤 지점이 정당한 사유인지에 대해서는 판시하지 않았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