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만 군인이냐”…조교·조리병들도 열악한 처우에 반발

입력 2021-05-30 16:53
지난 29일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조리병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글과 함께 게재된 조리병의 취사하는 모습. 페이스북 캡처

훈련병에 대한 인권 침해 논란을 빚은 육군훈련소에서 조리병과 조교 등 병사들도 업무 과중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우리도 똑같은 군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휘관들이 훈련병·신병의 인권과 처우개선에만 몰두하면서 복무 여건이 열악해진 관리병사들의 사기 진작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군훈련소에 복무하는 한 조리병은 지난 29일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훈련소 특성상 쉬는 날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취사병 12∼14명이 최대 3000인분의 밥을 책임지고 있다”며 “요즘 부실 급식 문제로 취사병들이 전보다 업무가 가중돼 더 고되다”고 토로했다. 그는 3000명분의 부식과 보급품 수령은 물론 식재료 상하차에도 동원된다고 하소연했다.

작성자는 이어 “후방이라는 이유로 휴가를 적게 주며, 군 생활 1년 넘게 하는 동안 포상을 받는 경우는 전 취사병 통틀어 한두 번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며 휴식 시간 부족을 호소했다. 육군의 경우 중대급 이하 부대를 기준으로 150명당 조리병이 2명가량 배치된다. 해·공군의 절반 수준이다. 매주 3500여명의 훈련병이 대거 입소하는 육군훈련소의 경우 조리병들의 복무 여건이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조교들 역시 과도한 업무 부담과 함께 최근 기강 해이 문제를 짚고 나섰다. 지난 26일 ‘육대전’에는 “요금 군대는 조교가 훈련병들 눈치를 보기 바쁘다”며 “훈련병들이 이제는 일과 시간에 조교가 생활관에 들어오든 말든 누워 있다. 조교가 앞에 있어도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일삼는 훈련병이 태반인데도 상관들이 조교들의 인권은 신경 써주지 않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조교 4명이 훈련병 240명을 맡는 등 하루 17시간 넘는 격무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일 오전 6시 이전 방호복을 입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훈련병 취침 상태를 확인한 뒤 오후 1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다. 훈련병 고충 상담, 상비약 제공 및 의무실·병원 호송, PX·전화 이용 안내, 식사·종교 활동 인솔, 보급품 지급, 각종 검사에 이어 최근엔 반찬량을 재는 업무, 화장실 소독 업무까지 늘었다고 한다.

그는 “정말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조교들이 태반이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 때문에 누구도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사명감을 갖고 근무하지만 보상은 없고 사회에선 훈련소에 대한 질타가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육군훈련소가 훈련병 기본권과 인권 보장 차원에서 도입을 검토 중인 ‘흡연 허용’ 조치가 이뤄질 경우 조교들의 업무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작성자는 우려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일 국방부에서 열린 격리장병 생활 여건 보장을 위한 제11차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육군훈련소장은 조교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이들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서면서 “전 장병들의 기본권과 인권이 보장된 교육훈련과 병영문화 조성을 위한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불만에 일일이 이렇다 할 해결 방안을 내놓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군은 폭로 글이 올라올 때마다 “사실 파악 후 대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줄을 잇는 제보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군 내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내놓는 ‘PX 도우미’ 제도, 군 자체 고발 앱 개설 등의 대책들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훈련병·신병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내부 분위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표면화된 문제들이 군 복무기간 단축과 병력 감축, 관리·감독 부실, 휴대전화 허용 등 복잡한 원인이 얽힌 양상이지만 군 기강 확립을 통해 중심을 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군 관계자는 30일 “지휘관들이 군에 갓 들어온 훈련병들이 사고를 치지 않게 적응하도록 우선 배려하려다 보니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다양한 구성원의 사기와 업무를 고려해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