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무려’ 6700조원 예산안…부자 증세·빚으로 메운다

입력 2021-05-30 09:16
바이든, 내년도 6조 달러(6700조원) 예산안 제출
사회 인프라 개선·복지 강화·미국 경제 재건 의도
문제는 재원…바이든, ‘부자 증세’ 꺼내
부족한 자금은 빚으로…천문학적 재정적자 우려
“금리 싸니 지금 돈 쓰고, 나중에 적자 메우려는 것”
공화당 즉각 반발…예산안 운명, 예측불허

버지니아주 햄프턴의 랭리-유스티스 공군기지를 28일(현지시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형 성조기 앞에 서 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년도 미국 예산으로 6조 달러(6700조원)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책정했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번 예산안은 사회 인프라 확대·사회적 안전망 구축·소득 불평등 개선에 초점 맞춰졌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엄청나게 파괴적이었던 코로나19 사태로부터 미국 경제를 재건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재원 확보와 재정적자라고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의 계획은 기업들과 고소득자들에 대해 증세를 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자금은 빌리는 것”이라며 “바이든 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1조 8000억 달러(2000조원)으로 치솟는다”고 29일(현지시간) 우려했다.

AP통신은 “미국 연방정부의 누적 채무는 조만간 30조 달러(3경 345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바이든 예산안의 메시지는 ‘금리가 싸니 지금 돈을 쓰고, 적자는 나중에 메우자’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야당인 공화당에선 즉각적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공화당은 “재정적자가 미국 경제에 발목을 잡고, 재정적자를 메워야 할 젊은 세대들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천문학적 예산안에 국방 관련 예산이 부족하다는 질타도 있다.

상원 예산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예산규모에 대해 “미친 듯이(insanely) 높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구체적인 사업 예산에 대해 공화당과 협상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내년도 예산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결국 이번 ‘슈퍼 예산안’의 운명은 결국 미국 국민들이 빚을 지더라도 코로나19 극복과 복지 확대를 추진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힘을 실어줄지, 아니면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공화당 편을 들지에 달려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을 강타하기 시작했던 지난해 3월 17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원스톱 직업 센터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도움을 얻기 위해 줄 서 있다. AP뉴시스

코로나 극복·복지 확대…“바이든, ‘빚을 잠시 잊을 것’ 원해”

바이든 대통령은 2022회계연도 예산안으로 6조 달러 규모의 예산안을 28일 의회에 제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예산안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만 1700쪽이 넘었다고 전했다.

NYT는 특히 “이번 예산안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 수준”이라고 “코로나19 이전 시기와 비교할 때 거의 35% 인상된 예산안”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바이든은 미국 경제에서 연방정부의 역할을 대규모로 확장하는 내용을 제안했다”면서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보이지 않았던 추세”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예산안 내용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중점적으로 밀어붙이는 두 가지 정책 방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인프라 개선과 사회 안전망 확대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2조 3000억 달러(260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이 포함됐다. 또 미국 가정의 복지와 교육을 위해 1조 8000억 달러(2000조원)가 책정됐다.

기후변화와 여성인권·총기범죄 감소 등 바이든 행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들에 대해서도 큰 돈이 들어갈 예정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도 기후변화 예산으로 140억 달러(15조 6000억원)를 배정했다. 또 미국 법무부의 여성 인권 프로그램에 10억 달러(1조 1150억원)이 투입할 예정이다. 총기 범죄·사고를 줄이기 위한 사업에도 21억 달러(2조 3400억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예산안 보고서에서 “경제에서 낙수효과(대기업과 부유층의 부가 늘어나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의미)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예산안은 우리 경제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밑이나 중간에서부터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예산안”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전체적으로, 이번 예산안은 부자와 연줄이 좋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예산안은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임금을 만들 것이며, 가난과 인종차별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WP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들이 재정적자는 잠시 무시할 것을 원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100달러 지폐. 신화통신·뉴시스

‘부자 증세’에 부족하면 빚으로…공화당 “오히려 경제 악화될 것“

그러나 문제는 재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부자 증세’를 꺼냈다. AP통신은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을 “세금을 걷고, 돈을 쓰자”라고 표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3조 6000억 달러(약 4000조원)에 달하는 증세 계획을 내놓았다. 핵심 대상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올릴 계획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통해 10년 동안 2조 달러(2230조원)의 세수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NYT는 “법인세 최고세율 28%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감세를 결정하기 전 35%에 비해 낮은 것”이라면서도 “아일랜드 등 조세 피난지역의 일부 저항에 직면한,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 협상과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고소득자을 겨냥한 소득세 최고세율도 37%에서 39.6%로 인상된다. 부부 합산 연간 51만 달러(5억 6000만원), 개인 45만 달러(5억원) 이상 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10년 동안 7000억 달러(780조원)의 세수 증대를 예상하고 있다.

증세를 해도 부족한 재원은 돈을 빌리는 것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AP통신은 이에 대해 “미국 연방정부의 채무는 조만간 30조 달러(3경 345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며 “그 결과로 미국 정부는 올해와 내년에 1달러를 쓸 경우 50센트를 반드시 빌려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의 ‘수퍼 예산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 가지 이유다. 증세가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며, 재정적자는 젊은 세대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며, 국방 관련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정책을 다루는 부처들에 대해 예산을 16% 증액했으나, 국방 예산은 고작 1.7%가 올랐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상원 예산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그레이엄 의원은 “비(非) 군사적 분야에 대한 엄청난 지출”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