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 고(故) 손정민(22)씨의 친구 측이 두 번째 입장문을 내며 반박에 나섰다.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손씨 아버지가 재반박한 지 약 하루 만이다.
친구 A씨의 법률대리인 정병원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 변호사는 29일 22쪽 분량의 입장문에서 “근거 없는 의혹과 허위사실로 A씨 측이 입고 있는 정신적인 피해가 막심한 상황에 또 다른 유언비어가 양산되면서 일부 잘못된 부분과 몇 가지 의혹을 바로잡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입장문은 A씨 측 입장을 별도로 확인하지 않고 원앤파트너스가 독자적으로 해명하거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작성됐다”고 덧붙였다.
“술자리부터 8시간 동안 기억 없다”
정 변호사는 우선 “A씨가 ‘블랙아웃’(지나친 음주로 인한 단기 기억 상실)을 겪은 시점은 (손씨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난달 24일 오후 11시14분쯤”이라며 “다음날 오전 6시10분쯤 (손씨를 찾기 위해) 부모와 한강공원 방문을 마치고 귀가하기까지 기억이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A씨는 손씨를 만나기 전 다른 술자리에서 이미 청주 2병을 마셨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변호사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비춰 A씨가 겪은 기억장애와 만취 상태에서의 움직임 등이 극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블랙아웃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라는 주장들이 있으나 기억장애 증세를 증명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 본질적으로는 블랙아웃이 있었다는 것과 고인이 사망한 것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라며 “마치 A씨가 술에 취해 사고 당시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곧 A씨가 고인의 사망에 뭔가 기여한 것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처럼 말하는 일부의 주장을 보면 당혹스러움을 금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 변호사는 또 A씨가 손씨를 찾으러 부모님과 한강공원에 갔을 때 바로 술을 마셨던 장소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자리를 잡은 시점’이 블랙아웃 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그 전의 일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기에 차량으로 이동하던 당시 A씨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을 가리켰고 이에 A씨와 A씨의 아버지가 차에서 내린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손씨가 언덕에서 넘어져 이를 A씨가 끌어올리러 가다 미끄러졌던 것 같은 기억 등은 1차 참고인 조사 때부터 일관되게 한 진술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다만 “언덕과 강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고 A씨에게는 물에 젖은 흔적이 전혀 없는 점에 비춰 언덕 부근에서 손씨를 끌어올린 기억과 입수는 무관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손씨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앱이 설치돼 있으니 이 내용이 공개되면 오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씨가 강비탈만 봤다’는 유족 주장, 사실과 달라”
정 변호사는 손씨를 찾기 위해 한강공원으로 온 A씨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15분 이상 강비탈만 번갈아 오르내렸다는 유족 측 지적도 반박했다. 손씨의 유족은 CCTV 영상에 포착된 A씨 부자의 행동이 실종된 사람을 찾으려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정 변호사는 “A씨와 그의 아버지가 강비탈 부근에 머문 시간은 각각 7~8분 정도”라며 “A씨의 아버지가 한강공원 안쪽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공원에서 강까지의 거리가 가까워 위험해 보였기 때문에 놀라 강쪽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강비탈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어 혹시라도 고인이 그쪽에 누워있는 게 아닌지 확인하고 내려가 천천히 이동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실종 당일 오전 2시18분쯤 목격자가 촬영한 사진과 관련, 손씨가 만취해 누워있는데도 A씨가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유족 측 주장에 대해 정 변호사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유족의 주장은 모두 A씨가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고인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했는데 같이 술을 마신 친구는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유족의 절박한 심정을 전혀 납득 못할 바는 아니지만 책임이 오로지 A씨 측에게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억측이 아닐까 한다”며 “유족이 의혹을 제기하고 싶었다면 공개적이 아니라 경찰에 직접 의견을 제시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족은) 이미 경찰에 같은 내용으로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를 요청해왔고, 경찰은 이에 부응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대로 수사했다”고 비판했다.
“티셔츠 버린 이유? 토사물 묻고 낡아서”
정 변호사는 A씨가 술자리 당일 입었던 신발과 티셔츠를 버린 경위도 밝혔다. 그는 “티셔츠는 2장에 만원 정도 하는 것으로 오래 입어 낡은 상태에서 토사물까지 묻어 버렸다”며 앞서 설명한 신발을 버린 이유와 비슷하다고 했다. A씨 측은 당시 신었던 신발을 버린 경위에 대해 유족 측이 의혹을 제기하자 “신발이 낡고 밑창이 닳아 떨어져 있었으며 토사물이 묻어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렸다”고 해명한 바 있다.
정 변호사는 티셔츠를 버린 부분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신발’에만 초점이 맞춰져 논란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이에 한정해 설명한 것일 뿐, 제기되지 않은 의혹을 해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강남의 부유한 집이라고 해서 토사물이 좀 묻었다고 세탁조차 하지 않고 옷과 신발을 쉽게 버리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각자의 생활 방식의 차이가 의혹의 원인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손씨의 유족 측이 A씨의 신발과 티셔츠가 젖은 것 같다고 주장하는 점에 대해서는 “신발과 티셔츠는 젖어있었으나 반바지는 젖지 않았다는 게 되는데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홀로 귀가할 당시 탑승한 택시 기사는 “옷이 젖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으나 운행 종료 후 내부 세차 시 차량 뒷좌석이 젖어 있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극단적 선택·가출 가능성 먼저 언급한 건 유족”
정 변호사는 손씨가 실종된 다음 날 A씨와 유족이 만났을 때 극단적 선택이나 가출 가능성을 먼저 언급한 것이 손씨의 부모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화 도중 고인의 부모님은 고인의 가출 가능성을 먼저 언급하면서 A씨에게 ‘부모는 모르고 친구만 알 수 있는 고인의 고민 같은 것을 혹시 알고 있느냐’고 거듭 물었다”고 했다.
A씨는 이에 대답하는 차원에서 손씨가 언급했던 가족, 학업 관련 고민들과 손씨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힘들어했던 것 등을 말했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A씨가 고인의 극단적 선택이나 가출의 가능성에 대해 먼저 암시한 일이 전혀 없다”며 “다만 고인의 아버지가 대화 도중 눈물을 흘려 이를 위로하고자 ‘고인이 꼭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 사실은 있다”고 했다.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시자고 제안한 것도 손씨였다고 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A씨는 한강공원보다 다른 친구의 집에 가기를 원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 손씨에게 갈 장소를 정해달라고 메신저 메시지를 보냈다. 둘이 만난 후에는 A씨가 본인의 집에서 마시자고 한 번 더 제안했으나, 손씨가 더 가까운 반포한강공원에서 마시자고 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에 일체 응했다”
A씨가 경찰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정 변호사는 “조사 시간을 변경해달라는 요구 한번 하지 않고 일체 응해 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A씨와 A씨의 부모가 거듭 받은 참고인 조사, 최면 조사, 프로파일러 면담 등은 참고인에 대한 조사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라며 “사실관계 확인이 끝난 후에도 떠도는 각종 루머 및 의혹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이뤄진 것은 더더욱 이례적”이라고 했다.
‘아이패드를 늦게 제출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전자기기는 디지털 포렌식으로 내용이 전부 확인되기 때문에 제출 시기가 문제되지 않는다”면서 “아이패드의 경우 지난달 26일 첫 조사 당시 경찰에 제출했다가 조사 후 다시 돌려받았다. 이후에도 경찰에서 요청할 때마다 가지고 가 제출했고, 포렌식을 위해 제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A씨 측이 실종 이후 손씨를 찾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A씨 아버지가 지난달 26일과 27일 사이에 ‘전단지 배포’ 등을 언급하며 손씨를 찾는 일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유족 측에서 ‘요즘은 인터넷을 활용해 찾는 게 중심이고 밖으로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 괜찮다’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이후 유족이 A씨를 의심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고인을 찾는데 참여하려 해도 거절당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또 조문도 A씨는 처음부터 가고 싶어했으나 의심하는 분위기 때문에 가기 어려웠다며 “A씨의 마음이 워낙 간절해 긴 논의 끝에 최대한 사람이 없을 시간을 골라 A씨와 그의 부모, A씨의 작은 아버지가 조문을 갔던 것”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늦은 시간 집까지 찾아와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해 A씨 가족은 임시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다”며 “지난 입장문에서 근거 없는 억측과 제기, 신상털기 등 각종 위법 행위를 멈추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한 바 있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부디 더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