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칼 든 모습을 보자 너무 두려웠고, 도망치고 싶었는데 뒤에 있는 동생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어머니가 우릴 죽이려는 사탄으로 보였습니다…”
과일을 깎기 위해 부엌칼을 들고 있던 어머니가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휩싸여 어머니를 살해한 20대 남성이 법원으로부터 징역 12년과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다. 고모(27)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집 주방에서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로 기소됐다.
사건을 심리한 춘천지법 형사2부(진원두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범행은 반사회적이고 패륜적인 범죄로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가정과 떨어져 혼자 살아가면서 정신질환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군대를 전역한 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2017년부터 독립한 고씨는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가족과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17일 고씨의 어머니(54)는 ‘오랜만에 보고 싶다’며 고씨에게 연락을 했고, 오랜만에 모자는 고씨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그러나 이튿날인 18일 낮, 고씨는 당시 주방에서 과일을 깎기 위해 부엌칼을 들고 있던 어머니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고 착각해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당시 고씨는 지체장애 1급인 동생의 사진이 검은색 액자에 담겨있는 것을 보고 동생이 학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도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겹쳐 망상에 빠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존속살해 혐의로 법정에 선 고씨는 최후진술에서 “순간 어머니가 사탄으로 보였다”며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며 반성문도 41차례나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점과 재범 위험성이 높은 점을 고려해 징역 20년과 전자발찌 부착 20년 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법원은 검은색 액자에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 사진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동생이 학대받고 있으니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점과 임상 심리평가 결과 망상의 영향으로 현실검증력이 떨어진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심신미약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범위험성에 대해선 “사이코패스 평정척도나 재범 위험성 평가척도에서 ‘중간’으로 평가되긴 했으나 현재 발현된 정신질환에 제대로 된 정신과적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는 한 재범위험요인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의 전자발찌 청구 명령을 수용했다.
그러나 고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검찰 역시 항소하면서 사건은 다시 한 번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