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목소리]“죄 짓지 않았는데도 감옥에 있는 것 같아요”

입력 2021-05-29 06:00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소년의 삶은 어떨까. 시대는 무척 달라졌지만 여전히 청소년들이 삶 가운데 느끼는 ‘억압’은 존재한다. 그 생생한 실태와 이를 바꿔보려 노력해온 이들의 목소리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① “학생답지 못하게…” 청소년 ‘억압 사례’ 돋보기
②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 ‘치이즈’ 이야기

기사에 언급된 사례는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제보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됐음을 알립니다. 해당 기사 속 등장인물 및 배경은 특정 지역, 학교, 단체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학교 안 청소년 A양, ‘양말 길이도 학교가 정해’
학칙에 맞는 차림으로 등교하는 A양. 색상 있는 내의와 양말은 금지되고 머리는 검은색 머리끈으로 '단정히' 묶어야 하며 SNS를 불시검문 당할지 모르니 핸드폰은 늘 꺼둬야 한다. 일러스트 노유림 인턴기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A양은 아침마다 등교준비로 분주하다. 속바지를 챙겨 입고, 색상이 진하지 않은 흰색 혹은 파스텔톤 브래지어를 챙겨 입는다. 양말도 복숭아뼈를 완전히 덮을 만큼 길지는 않되 복숭아뼈 아래에 그칠 만큼 짧지는 않은 양말을 찾아 신어야 한다.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도 살구색 혹은 하얀색 내의를 꼭 입어야 한다. 지난주 깜빡하고 흰색 내의를 입지 않은 A양은 벌점을 받았다. 가까이서 봐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한데도 교사는 A양의 가슴께를 손가락질하며 ‘브래지어 보여주려고 그렇게 입고 온 거냐’며 불쾌한 검사를 이어갔다. 그날 이후 A양은 내의를 절대 잊지 않는다.

머리를 매만지려 거울을 들여다본다. 늘 하나로 딱 묶어낸 머리가 그의 고정 스타일이다. 똥머리, 염색 파마, 앞머리 묶음, 푼 머리, 고데기한 머리, 집게 핀 꽂은 머리, 색깔 실핀의 착용이 모두 불가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묶을 때도 눈썹 위로 묶어서 안 된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높게 묶은 포니테일은 금지된다는 뜻이다.

A양의 친구이자 남학교에 다니는 B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리는 거의 빡빡머리 수준으로 짧게 밀어야 하고, 자연 갈색 머리인 학생은 검은색으로 염색을 해야 한다. A양과 B군의 학교 모두 복장 제한에 두발 규정으로 벌점을 메기며, 벌점이 쌓이면 학생회 등의 임원직도 맡을 수 없다. 학업과 무관한 사안으로 학생 활동에 불이익을 주는 현실에 한숨이 나온다.

지난 14일 저녁 신촌에서 아수나로 서울지부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학생인권팀이 함께 지나친 교복규정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아수나로 트위터 캡처

매일 교복 차림으로 10시간 가까이 생활하는 A양. 교복이 꽉 끼고 갑갑한 탓에 소화도 잘 안 된다. 고무줄로 된 체육복 바지라도 입으면 좋으련만 체육복은 체육 시간 이외에는 절대 입을 수 없다. 주민들이 ‘학생답지 않다’며 반대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겨울에 영하의 날씨에도 패딩을 입을 수 없다.

교문에 들어선 순간 A양은 휴대전화를 껐다. 언제 개인 SNS를 불시검문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내에서 교복을 입고 머리를 풀었거나 화장한 모습의 사진이 SNS에서 발견되면 바로 벌점을 받는다. 벌점이 500점 누적되면 퇴학까지 당할 수 있다. 벌점 500점을 언제 다 쌓을까 싶지만, 선생님의 지도에 혼잣말로 불만을 표하는 행위가 벌점 100점임을 감안하면 절대 못 쌓을 수치도 아니다. 특히 A양의 학교는 직업계 고등학교라 취업 알선 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의 눈 밖에 났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A양은 오늘도 마음을 졸이며 등교를 한다.

학교 밖 청소년 C군, ‘자퇴=비행 청소년?’
아수나로 사무실에 놓여진 포스트잇. 청소년 억압에 반대하는 메세지가 적혀있다.

C군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자퇴 후 탈학교 청소년이 됐다. 학교 안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게 힘들어 자퇴했던 터라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해주는 센터를 찾아 교육을 받고자 했다. 그런데 C군의 생각과 달리 센터의 교육과정은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적어도 고졸은 해야 한다며’ 검정고시 위주의 수업을 진행했고, 다양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도 적었다.

심지어 일부 강사는 엄격하게 수업을 통제해 C군은 답답함을 느꼈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 오는 일부 강사들은 종종 C군 등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느껴질 만큼 심한 말을 했다. 어떤 강사는 그를 ‘사회 부적응자나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쯤으로 여겼다. 때로 원치 않는 동정을 하기도 했다. C군은 범죄를 저지르지도, 대책 없이 자퇴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문제아 취급하는 일부 강사들에게 실망감을 느꼈다.

틀에 박힌 교육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C군은 학교 밖에 나와서도 여전히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사들은 ‘어차피 취업이나 하려는 애들’ 등 고정관념 섞인 말을 쉽게 내뱉었다.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할 곳에서도 강제적이고 고정관념이 가득한 교육을 받으며 C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다움’의 틀에 갇혀…학교 안·밖에서 고통받는 청소년
서울시에 위치한 한 학교의 학칙. 춘추복에 검은 스타킹을 착용할 시 '벌점 3점', 학교 내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경우 '벌점 30점'을 받게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자료제공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앞서 언급한 A양과 B군, C군의 사례는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겪었던 상황이다. 일부 학교의 지나친 교복 규정은 학교 내 ‘단정함’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인권침해’라는 지적까지 불거진다.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소속 문장길 서울시의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31곳의 여자 중·고등학교가 속옷 등과 관련해 지나친 학칙을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지난 3월 9일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 제12조 2항 ‘학칙으로 복장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삭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같은 달 19일 각 학교에 관련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는 강제성이 없어 해당 조항이 삭제됐음에도 큰 실효성이 없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는 지난 3월 15일부터 5월 12일까지 ‘우리 학교에 아직도 이런 복장 규제가 있어요!’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서울 55개 학교, 전국 총 152개 학교 초중고 학생들로부터 400건에 가까운 제보가 접수됐다. 학생들은 여전히 인권 침해적인 복장 규제를 받고 있다고 고발했다. 아수나로의 활동가 치이즈씨는 “(학생들이)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감옥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며 “학교에 다니면서 복장조차 편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사회가 얼마나 학생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보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축을 가져다주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마땅히 존중받을 권리조차 박탈당할 때가 많다.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관련 기관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실제 이들에게 제공되는 교육과 관리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의 욕구나 바람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기관이나 프로그램이 학교 밖 청소년의 검정고시 응시에 맞춰져, 검정고시 실적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 교육의 다양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일부 센터에서는 수업이나 교육을 강제하거나,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현장에서 강사가 청소년들과 문제를 빚기도 한다. 그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게 된 배경이나 이유와 상관없이 여전히 어른들의 편견에 찬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셈이다.

치이즈씨는 “학교를 자퇴했다고 하면 (청소년에게) 문제가 있거나 취업을 목적으로 자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청소년 탓으로 바라보는 기존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청소년이 떠나기로 할 만큼 학교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또 현행 학교 체계에 과연 잘못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유림·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