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떠오른 ‘조국의 시간’…與 대선판 ‘혼돈의 시간’

입력 2021-05-29 00:15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이 여당 대선판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검찰개혁과 불공정 문제를 둘러싼 조국사태 논란이 재점화할 기류를 보이고 있다. 특히 대선후보 예비경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여당 내에선 친문 결집의 계기가 될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조 전 장관을 옹호하며 친문 지지층 구애 경쟁에 들어갔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8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대담집에서 지적했던 입시제도 불공정은 조 전 장관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정부가 도입한 제도를 비판한 것이라며 연일 진화에 나섰다. 이 전 대표는 대담집 ‘약속’에서 “논문의 제1저자 등재나 특정계층 학생만이 부모 찬스를 이용해 인턴을 하는 조건은 입시제도 자체가 불공평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조 전 장관의 딸 사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 직후 ‘조국의 시간’ 출간 소식이 알려지자 이 전 대표는 “그런(조 전 장관을 비판한) 것이 아니다”라며 “조 전 장관이 등장하기 훨씬 전 이명박정부 시절 제도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이룸센터에서 '이낙연의 약속'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대표는 전날만 해도 “(대담집 내용이) 조국 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곧바로 책 출간 사실을 알리며 여당에서 자신을 향한 책임론이 나오는 데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자 수습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조 전 장관에 대해)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고도 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조 전 장관의 책 출간을 언급, “조국의 시간은 역사의 고갯길이었다”고 썼다. 이어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서초동의 촛불을 가른 고개다. 공정과 불공정이 교차하고 진실과 거짓이 숨을 몰아 쉰 넘기 참으로 힘든 고개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발가벗겨지고 상처 입은 그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는 조 전 장관의 글귀에 대해 “자식을 둔 아버지로, 아내를 둔 남편으로 가슴이 아리다”고 공감을 표했다.

대선 출마가 유력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이날 SNS에 “조국의 시련은 개인사가 아니다. 촛불로 세운 나라의 촛불개혁의 시작인 검찰개혁이 결코 중단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일깨우는 촛불시민 개혁사”라며 조 전 장관을 치켜세웠다.

그는 “촛불시민의 명령인 검찰개혁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 나아갔던 그에게, 검찰의 강력한 저항 한가운데로 돌진했던 그에게, 온 가족과 함께 시련과 모욕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그에게, 무소불위 검찰 권력과 여론재판의 불화살받이가 된 그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중단 없는 개혁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것”이라며 “‘조국의 시간’은 우리의 이정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4·7 재보궐 선거 참패 이유 중 하나로 ‘조국 사태’가 꼽히고, 외신에서까지 ‘내로남불(Naeronambul)’이라는 단어가 소개될 정도로 조 전 장관이 불공정의 상징이 되면서 여당 내에선 조 전 장관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왔다.

그러나 경선을 코앞에 두고 출간되는 그의 저서가 친문 결집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면서 여권 대선주자들도 태세 전환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친문 네티즌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저서 구매 인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조 전 장관 저서를 통해 검찰개혁이 다시 화두에 오르면서 이를 앞세운 대권주자들의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연일 날선 발언을 하며 검찰개혁을 촉구했고, ‘노무현의 오른팔’ 이광재 민주당 의원도 전날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은 제가 누구보다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통령 출마 선언식에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에선 조 전 장관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저서 출간 보도를 공유한 뒤 “가지가지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 내에 조 전 장관 사태를 비판했다가 친문의 집중 공격을 받으며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진 전 교수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황규환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조 전 장관이 재판 중인데도 억울하다며 국민 기만극을 펼치려 하고 있다”며 “그렇게 억울하다면, 그렇게 당당하다면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다음 달 ‘자녀 입시비리’와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재판을 앞두고 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