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회고록 ‘조국의 시간’에…또 둘로 나눠진 나라

입력 2021-05-29 06:00
‘조국의 시간’을 위해 사인을 하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한길사 SNS 캡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한길사)’의 출간을 두고 또다시 여론이 나뉘어 출렁이고 있다.

조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후의 시간을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으로 기록했다며 출간을 예고했다. ‘조국 사태’ 당시 나라를 둘로 갈랐다는 평을 들었던 만큼, 그의 신간을 두고도 여야 정치인과 지지층이 양분돼 지지와 비난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이 책은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조 전 장관에게 진실을 밝히자는 차원에서 먼저 출판을 제안해 나오게 됐다. 김 대표는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조국의 시간’은 조 전 장관 개인의 시간이나 아픔이 아니고,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짊어지고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라며 “(조 전 장관이) 있을 수 없는 고난을 당했는데 진실을 밝히고 기록을 남기자는 차원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이 집중해서 집필하는 데 2개월 정도, 이후 편집 작업까지 6개월이 걸렸다. 김 대표와 조 전 장관은 책을 출간하기까지 수차례 검증과 확인 작업을 거치며 오류 없이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조 전 장관 트위터 캡처

조 전 장관은 전날 소셜미디어에 다음 달 1일 책 출간 소식을 전하면서 “촛불 시민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그는 “오랜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밝히고 싶었던 사실과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허위보도와 과장이 난무하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한 조직 이기주의에 맞서 내놓는 최소한의 해명이자 역사적 기록”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그가 자녀 입시 비리 논란 등으로 법무부 장관 취임 35일 만에 퇴임한 뒤 19개월만의 출간이다.

책은 2019년 8월 9일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후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민정수석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락하는 과정, 본인과 가족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한 입장, 이후 서초동 촛불집회를 지켜보던 마음, 2019년 12월 유재수 사건의 직권남용죄로 동부구치소에 입감돼 있던 순간의 심경 등을 모두 담았다.

공식 판매 시작 전부터 반응이 뜨겁다. 한길사 측은 27일 오후 4시 온라인 서점에 신간으로 등록된 지 8시간 만에 4대 서점(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에서 1만5000부가 팔렸다고 전했다. 출판사에선 당초 초판으로 4만부를 준비해뒀는데, 독자들의 반응에 증쇄에 들어간 상태다.

28일 조국 전 장관의 저서 ‘조국의 시간’이 인터넷 서점 예스24 베스트셀러 국내 도서 분야 1위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예스24 홈페이지 캡처

김 대표는 “우리가 다 제작하지 못할 정도로 서점에서 많이 주문하고 있다”며 “우리 출판 역사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정말로 ‘조국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코로나19로) 촛불 행진을 못 하는데 오히려 책을 통해 우리들이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서초동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단체와 클리앙 등 강성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단체 주문과 책 구매 인증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서점의 리뷰 창에는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위로와 검찰개혁을 응원하는 지지층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교보문고에 글을 올린 네티즌은 “당신 가족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검찰개혁 꼭 완수합시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이는 “몸이 반응해서 나도 모르게 결제 버튼을 눌렀다.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또 “검찰이 얼마나 더러운 집단이고 없는 죄도 만들고…” 라는 등 ‘조국 사태’의 책임을 검찰에게 돌리는 목소리도 나왔다.

책 출간 소식에 여야 정치인들은 지지와 비난의 목소리를 엇갈려냈다. 대선을 1년 앞두고 또다시 조국 사태와 촛불 개혁에 대한 평가를 놓고 여야가 충돌할 조짐마저 보인다.

조 전 장관의 후임이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조국의 시련은 개인사가 아니다. 촛불로 세운 나라의 촛불 개혁의 시작인 검찰개혁이 결코 중단돼서는 안 됨을 일깨우는 촛불시민 개혁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가족이 수감되시고, 스스로 유배 같은 시간을 보내시는데도 정치적 격랑은 그의 이름을 수없이 소환한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며 “조 전 장관께서 고난 속에 기반을 놓으신 우리 정부의 개혁 과제들, 특히 검찰 개혁의 완성에 저도 힘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조 전 장관의 책 출간을 언급, “조국의 시간은 역사의 고갯길이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서초동의 촛불을 가른 고개”라고 썼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캡처

반면 야권에서는 조 전 장관의 신간에 즉각 비난이 쏟아졌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조 전 장관의 책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라는 홍보 문구에 “그러다 오줌싼다”고 비꼬았다.

황규한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도 구두 논평으로 “무슨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단 말인가. 조 전 장관이 보여준 불공정과 부정의는 그저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나쁜 불장난일 뿐”이라며 “조 전 장관은 재판 중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억울하다며 또다시 국민 기만극을 펼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국 흑서'로 불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천년의 상상 제공

‘조국 흑서’로 불리는 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동 저자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지가지 한다”고 비꼬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경애 변호사는 “다시 한번 국론 분열 확장을 꾀하신다. 민주당 대선은 이 책으로 인해 물 건너간 듯하다”면서도 “또 뭐라고 혹세무민하는지, 재판에 내놓을 만한 항변은 적혀 있는지 파악해 보려고 책을 사게 될 테니 잘 팔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책의 출간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조 전 장관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재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관련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입시 비리 및 사모펀드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당시 재판부는 정 교수의 혐의 중 업무방해,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등 일부에 대해 조 전 장관과의 공모가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놨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