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를 지내는 요즘 한국교회와 사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성찰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역사가 주는 교훈에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보는 특별한 좌담이 진행됐다.
국제신학연구원(원장 김한경 목사)이 27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 제2교육관 12층 스튜디오에서 특집프로그램 ‘땅끝까지 복음을’ 진행했다.
이영훈 목사가 사회를 보고, 김형석(101) 연세대 명예교수와 민경배(87) 백석대 석좌교수가 대담자로 나섰다. 주제는 ‘위기와 희망, 역사 속에서 길을 묻다’였다.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둔 백세 철학자로서 한국 근대사와 함께 기독교 역사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을 김 교수가 지난 삶 속에서 체득한 혜안을 다음세대에게 전했다. 연세대 신과대 학장을 지내며 한국교회사에 조예가 깊은 민 교수가 신학적 성찰을 담아 첨언했다.
<참석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
사회=이영훈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오늘 귀한 두 분의 교수님과 함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역사를 성찰하며 미래의 희망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게 돼 뜻깊게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는 위기의 순간에서 두 교수님으로부터 평생의 연구와 기도로 얻은 역사에 대한 혜안을 배우고 이 내용이 출판됐을 때 많은 사람 특히, 젊은 세대들을 미래의 희망으로 이끌기를 기대하는 맘으로 두 교수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이 시대에 직접 영향 미친 과거 떠오르면 개신교를 받아들인 19세기 중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19세기 중후반부터 오늘까지 우리 역사에 대한 두 교수님의 개인적인 체험, 학문적 성찰, 신앙적 이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과거의 역사 속 위기 본질은 무엇이었고 그 속에서 찾을 궁극적 희망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형석 교수=한국 역사의 뿌리는 3.1운동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전 3.1운동 당시에 태어난 세대인데 그때부터가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가족 중심에서 국가 중심의 가치관으로 변화했다는 점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국가가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라가 없으니 가족은 있을 수가 없겠더라고 느끼게 된 변화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3.1운동을 계기로 전 국민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죠. 민족의식과 교육열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양이 먼저 기독교 정신을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를 생각하면 서울은 양반 위주의 사회였습니다. 유교적 전통과 불교 사상 등이 남아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평양은 전통성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반보다는 남쪽서 밀려온 이들이 살았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점이 신앙적 측면에서 먼저 깨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이처럼 기독교와 더불어 한국의 뿌리가 시작되고, 교육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해외에서 온 선교사가 한국 사람들에게 가르친 내용은 뭐였을까를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모든 이에게 자유와 행복의 권리를 주셨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경배 교수=한국이 역사적으로 자주 국가로 독립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 신앙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인정해주고 독립시켜준 게 바로 기독교와 미국이었습니다. 근대사에서 기독교와 미국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우릴 인정해준 나라였다는 점을 확인하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팬데믹 시대 극복을 위해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신앙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김 교수는 먼저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큰 어려움 없이 평생을 산 한 노인의 일화를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그 노인은 평생 재산관리만 하며 고통 없이 안주하는 삶을 사느라 인생을 오히려 잃어버렸노라고 고백했다.
김 교수=시련을 겪고, 도전을 받고 산 민족이 나라 구실도 하고, 문화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시련이나 고통을 겪는다고 하면, 왜 이런 시련이 왔느냐면서 평안하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어떤 면에선 그것이 꼭 축복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련을 극복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역사가 말해줍니다. 한국도 강대국 사이에서 시련을 겪으며 살아왔기에 지금과 같은 문화를 남겼지, 평안하기만 했다면 지금의 문화 혜택을 얻고, 정신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성경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인류에게 주어진 자연법칙을 선한 방향으로 사용하면 축복이 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더 많은 이의 행복으로 이끌어가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인데 이를 역행해 인류가 파괴되고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도 그동안 살면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돌아보면 내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운명이라고 하는데, 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섭리는 누구보다 보람 있고, 값있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선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시련을 하나님의 섭리이자 은총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습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릴 키워주는 섭리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나가자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인류는 그동안 자기 민족, 자기 나라만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시련을 인류가 함께 겪으며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모두가 함께 살아야겠다’라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서로가 마음을 열면 이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련을 극복해가며 스스로가 새로워지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시련을 통해 우린 인간다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민 교수=1895년 한국엔 지금과 같은 전염병, 괴질이 창궐했습니다. ‘시구문’이라고 시체를 쌓아 놓는 곳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병이 한국 전역을 돌 때 한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은 전염병을 취급하는 병원을 세우고, 길거리에 버려진 시체를 닦아 장례도 치러줬습니다. 아픈 이들을 치료해 줘 60%가 넘는 이들을 고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한국 선교사들에게 무슨 약을 썼는지 조사했지만, 별다른 약이 아녔습니다. 기독교 사랑으로 고친 것입니다. 고통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기독교인이 나섰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우리를 끌어 올려 천국으로 함께 올라간다기보다 우리가 아플 때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구별되고 남녀 간의 경계선이 있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성경에도 인간이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을 구분해놨습니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그 구별을 안 한 것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겼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간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요즘, 우린 창조질서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질서를 바로잡아가야 코로나19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영적으로 무기력해지고 침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코로나로 비판받는 교회가 가진 문제점과 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 교수=제가 학창시절에 교회에서 배운 건 신앙의 기초가 교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과 고당 조만식 선생 등의 강연을 듣게 되며 그저 신앙을 교리로 받아들이는 차원보다 모든 인류에게 전해질 진리인 예수님의 말씀을 내 인생관이자 가치관으로 삼는, 더 높은 차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또 성경 속 예수님은 왜 교회 걱정을 안 하셨을까를 생각해보니 예수님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교회 존재의 목적보다는 하늘나라를 사람들 마음에 심어주시려는 것이 예수님 때부터 시작된 신앙의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 나라를 배제하면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 다니는 이들보다는 믿지 않는 교회 바깥사람들에게 더 빨리 전파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자 모범이고, 더 큰 목적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만들고 이끄는 것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교회는 모든 기독교공동체의 모체, 뿌리가 돼야 합니다. 기독교를 너무 우리 안의 울타리에서만 보지 말고, 넓게 봐야 하나님 나라가 이뤄진다고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 사람은 나와 다른데 그런가 하고 알고 보니 크리스천이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 좋은 일꾼들을 많이 내보내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세상의 모체가 되고 생명력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민 교수=교회는 그 나름대로 율동성이 있다고 봅니다. 일 년 내내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기도할 때도 있고, 그것이 주는 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율동성도 있습니다. 3.1운동 당시에도 교회의 성령 운동은 그저 내부의 운동으로 끝나지 않고 독립운동을 조직하게 되는 힘이 됐습니다. 나아가 교단총회를 조직하는 힘도 됐습니다. 속에서 불타는 내연의 신앙을 갖고 사회로 나와 외연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 교회와 기독교 신앙의 정수라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성장하게 된 건 성령 운동을 조직화해 계승한 엄청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전 초창기 한국교회는 십자가가 허물어지고, 성경이 다 찢겨나가는 상황에서도 교회를 지킨 이들의 신앙생활로 인해 살아남았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은 물량주의, 배금주의를 비난하며 떠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교회는 더 순수한 모습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순수한 이들이 교회의 중추가 돼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신다면요.
김 교수=세계적으로 3.1운동 이후 100년 동안 이만큼 경제 성장이 가능했던 나라가 한국 외엔 없었습니다. 그 바탕엔 교육이 있었습니다. 경제와 정치는 쇠퇴해도 교육은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 기초가 있기에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겐 정신적인 저력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확립해온 인생관과 가치관입니다. 이를 기독교가 꾸준히 지켜주면 희망적이라 봅니다.
교회는 안에서는 생명력을, 밖에선 창조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기독교 정신이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습니다.
민 교수=한국에 대한 세계의 기대는 엄청 큽니다. 한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지금 가진 헌법으로 통일되면 세계의 2인자가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미국 국무부는 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세계 기독교의 기수 국가라고 평가했습니다. 세계 기독교의 상징이 될 것이고, 세계를 선양할 국가가 한국이 될 것이란 얘기입니다.
1934년 일제 강점기 당시의 종교인이자 교육가였던 김교신 선생이 하신 말로 제 생각을 대신하려 합니다. 그는 매일 한국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신문 기사가 나올 때도 “조선대륙은 세계 대륙을 등에 업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려는 모습인가”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의 말처럼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를 등에 짊어지고 나가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나가길 바랍니다.
이 목사=기독교 신앙이 한국의 미래이자 희망이며, 위대한 힘이란 걸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우리 모두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 주신 두 교수님의 신학적 혜안과 철학적 사고가 젊은이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다음세대가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하나님 주신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되길 바랍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