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건 없고 휴직자는 속출”… 살인적 업무에 보건소 비명

입력 2021-05-27 18:02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보건소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의 모습. 연합뉴스

부산에서 격무에 시달리던 30대 간호직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두고 현장에선 예견됐던 일이라는 반응이 많다. 정부가 일선 보건소의 업무 부담을 덜겠다고 밝힌 지 한 달이나 지났지만 실제 업무 강도의 변화는 크지 않다.

충청권의 한 보건소 관계자 A씨는 27일 오전 부하 직원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식이 새벽에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바람에 결근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직원들이 모두 힘드니 서로 티도 못 내고 앓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주변 동료들이 ‘쟤 상태 안 좋다’고 귀띔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는 특정 보건소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확진자 수는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기존 방역 업무에 예방접종까지 겹치며 현장의 체감 업무 강도는 연일 코로나19 발병 이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허목 전국보건소장협의회장은 “심한 보건소는 휴직자가 20명에 달한다”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앞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달 25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일선 보건소에 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각 시군구별로 상당 부분 인력을 재배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시 일자리 사업을 활용해 행정업무를 보조하도록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고 했다.

인력 지원을 밝힌 지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현장에선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보건소장 B씨는 “‘지자체 인력을 지원하라’는 공문만으론 바뀌는 게 없다”며 “지침만 내려놓고 실제 지원이 이뤄졌는지 확인을 하지 않으니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선 한시적으로 기간제 근로자를 지원해주거나 지자체 인력을 파견시키는 방식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구청이 보건소 일을 ‘돕는다’고 여기는 인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현장의 부담을 줄일 세밀한 방역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A씨는 “지금은 어떤 지역에서 보육교사가 한 명 확진되면 전국적으로 보육시설 선제검사를 하는 식”이라며 “효과적이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접근법”이라고 비판했다.

보건소 현장 인력의 ‘마음 건강’을 챙기겠다며 운영 중인 통합심리지원단의 실효성도 낮다. A씨는 “직원들이 거의 매일 자정에 퇴근하는데 현실적으로 시간 여유도 없고, 대놓고 지원을 받기도 동료들에게 민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핵심은 업무 부담”이라며 “기본적으로 인력 증원이나 업무량 경감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