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책사’와 ‘대중 매파’ 첫 통화…미·중 무역협상 재개 신호

입력 2021-05-27 17:39 수정 2021-05-27 17:44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EPA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 대표가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에선 중국의 무역 관행을 비판해온 대중 강경파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중국에선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인 류허 부총리가 협상 대표를 맡고 있다.

류허 중국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 EPA연합뉴스

중국 상무부는 27일 “류 부총리와 타이 대표가 이날 오전 통화에서 상호 존중의 자세로 솔직하고 실용적이며 건설적으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또 “미·중은 양국 교역 발전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계속해서 소통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USTR 사무국도 “타이 대표는 류 부총리와의 향후 논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통화는 미·중 무역대표간 상견례 성격이 짙다. 타이 대표는 이달 초 열린 한 포럼에서 “아직 중국 측 카운터파트를 만나지 못했다”며 “가까운 시일 내 만남을 기대한다”고 운을 띄웠다. 이후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양측은 대화로 서로의 합리적 관심사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호응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양측은 많은 이슈에 대해 상당한 의견 차를 보이고 있지만 적어도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다뤄야할 핵심 쟁점으로 관세 철폐를 꼽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던 2018년 7월 대중 관세를 대폭 인상하며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미·중은 1년 반만인 2020년 1월 1단계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중국은 2년 동안 최소 2000억달러(약 223조원) 이상의 미국 상품과 서비스를 추가로 구매하고, 미국은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등의 영향으로 중국이 실제 구매한 미국산 제품은 당초 합의에 못 미쳤다. 미국 CNBC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분석을 인용해 올해 4월 기준 중국의 미국산 제품 구매액이 목표치의 73%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중국 세관 당국 자료를 근거로 했을 때 수치이고 미국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60%로 더 낮아진다고 한다. 그 사이 미국의 무역 적자는 더 늘었다. 이 때문에 미·중간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이 소통을 재개한 것이다.

협상 대표를 맡고 있는 두 사람의 이력도 관심을 끈다. 대만계 무역 전문 변호사 출신의 타이 대표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USTR에서 미·중 무역분쟁을 주로 담당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여러 차례 중국의 무역 관행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경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그를 ‘벨벳 장갑 속의 강철 주먹’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타이 대표는 고율 관세 부과 위주인 트럼프 전 행정부의 대중 무역정책을 비판하며 더욱 효과적인 공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타이 대표는 중국과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기 전 유럽연합(EU)과의 관계 회복에 공을 들였다. 미·EU는 지난 17일 공동성명을 내 “중국과 같이 무역 교란 정책을 지지하는 국가에 책임을 묻는 것에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의했다”고 밝혔다.

류 부총리는 시 주석의 심복이자 경제 책사로 알려져 있다. 2017년 5월 톰 도닐런 당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중 정상회담 의제 조율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 주석이 “류허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했을 만큼 신임이 두텁다. 류 부총리는 1960년대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 101중학을 다니면서 81중학에 재학 중이던 시 주석과 인연을 맺었다. 시 주석은 2012년 당 총서기가 되자마자 류허를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으로 발탁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