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나 전쟁으로 인류가 절멸한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혹시 동물들의 세상이 될까. 동물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란 어떤 모습일까.
‘개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문명’(전 2권)은 인간의 문명이 끝난 세상에서 시작되는 동물의 문명을 그려 보인다.
주인공은 고양이들이다. 전염병으로 수십 억명이 사망하고, 테러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에는 쥐떼들이 급속히 늘어난다. 고양이들은 쥐떼의 공격에 맞서는 한편, 인간 문명을 대신한 고양이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나선다.
소설 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동물들이 주연이고 인간은 조연에 불과하다. 유쾌하고 똑똑한 암고양이 바스테트가 소설의 화자다. 이마 위에 뚫린 구멍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샴고양이 피타고라스, 용맹한 사자 하니발, 쥐들의 왕 티무르 등이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인간 나탈리는 말 그대로 ‘집사’ 역할이다.
“칭찬해 줘서 고맙다고 전해 줘.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도 해줘. 인간 문명은 붕괴했지만 우리 고양이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지구를 지배할 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고양이 바스테트가 인간 나탈리에게 전해달라며 한 말이다.
인간은 죽기 살기로 싸우며 문명을 파괴하는 짐승으로 변했다. 식용과 실험을 위해 수많은 동물들을 살육해온 역사도 야만적이다. 반면 동물들은 종의 구별을 뛰어넘어 공감과 연대로 세상을 지켜나간다. 포로가 된 인간을 재판하는 동물 법정에서 돼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오. 세상은 그들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들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니까.”
“이 세상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베르베르가 강조해온 것이다. 개미나 고양이 같은 동물, 신이나 천사 같은 초월적 존재를 통해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해 왔다.
이번 소설에서는 메시지가 더 강력해졌다는 평이다. 책을 번역한 전미연씨는 “이번 소설에서 돼지들에 의한 인간 재판이나 실험동물의 현실을 고발하는 몇몇 대목은 베르베르 방식의 동물 해방 선언이라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명’은 2016년 출간된 ‘고양이’에 이은 두 번째 고양이 이야기다. ‘고양이’에서도 고양이 바스테트가 화자로 나와 인간 세상을 고양이의 눈에서 그려낸다. 베르베르는 고양이 이야기를 총 3부작으로 완성할 에정이라고 한다.
‘문명’은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는 고양이들의 모험담과 고양이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담은 ‘고양이 사전’, 두 갈래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직조됐다.
고양이 사전은 고양이 피타고라스가 에드몽 웰즈라는 인간 교수가 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참고해 만든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쥐들과 싸우는 것만큼 지식을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소중한 지식의 보고가 안전하게 보관만 된다면 우리가 죽더라도 훗날 자손들이 발견해서 읽을 수 있겠지. 그러면 우리의 기억은 불멸성을 획득할 거야.”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