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산에 중국 ‘백신’ 공세까지…궁지 몰린 대만

입력 2021-05-27 17:17
지난 18일 대만 사람들이 줄서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대만에서 뒤늦게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고 있다. 하루 한 자릿수였던 확진자 숫자가 이제 500명대까지 늘었다. 중국은 백신을 무기로 대만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26일 집권 민진당 회의에서 “독일 바이오엔테크(화이자) 백신의 제조사와 계약 체결이 가까웠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성사시킬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는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대만과 바이오엔테크가 지난 2월 백신 구매 계약 체결 직전 단계까지 갔다가 바이오엔테크 측이 이를 번복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25일 대만 타이페이의 한 지하철 역에서 방역 작업이 이뤄지는 모습. EPA연합

최근 지역사회 감염 확산으로 백신 물량 확보가 시급한 대만이 바이오엔테크의 백신을 공급받으려면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에 대해 백신 독점 공급권을 가진 중국 제약사 푸싱의약그룹과 계약해야 한다.

중국은 이런 대만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영향력 행사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주펑롄(朱鳳蓮)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섬 안의 일부 단체와 인사들이 대륙 백신 구매를 호소하고 있다”며 “우리는 신속히 준비해 많은 대만 동포가 시급히 대륙 백신을 쓸 수 있도록 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 직후 상하이 의약위생발전기금회와 장쑤성 해협양안문화교류촉진회 등 관변단체들이 대만에 백신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푸싱의약 역시 대만에 백신을 팔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신화, AP뉴시스

하지만 대만은 중국의 이런 제안에 “분열 술책”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산 백신은 필요 없고 백신을 사는 걸 방해하지만 말라는 것이다.

천스중(陳時中) 대만 위생부장은 26일 브리핑에서 “대륙이 현재 맞고 있는 백신을 우리가 함부로 맞을 수 없다”며 시노팜(중국의약그룹) 등 중국 제약사의 백신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다.

대만 대륙위 대변인 역시 “대륙 측이 다시는 대만이 방역 물자를 사는 것을 막지 않고 통일 전선 전술 차원의 압박을 중지하는 것이야말로 대만에 선의를 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정부가 중국산 백신을 받으라고 촉구하고 있는 시위대. 로이터연합

일단 중국의 백신 제안을 거절했지만, 대만 내부적으로는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야권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시민들의 백신 접종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당인 국민당을 중심으로 친중 진영은 적극적으로 중국의 백신 제공 제안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국민당 인사들은 최근 대만 위생부 앞에서 중국산 백신 수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도 “WHO로부터 승인받은 중국산 백신을 쓰겠다는 대만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것이냐”며 대만이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자크 딜라이얼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대만 중앙통신사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단편적으로는 돕겠다는 것이지만 실제 의도는 대만을 중국의 지방으로 간주, 대만이 '중앙'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인 국방안전연구원(INDSR)의 쑤쯔윈(蘇紫雲) 연구원 역시 “베이징 측이 백신을 정치화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가 매우 명확하다”며 “중국 백신은 사용된 나라들에서 효과도 불안정했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