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법원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업에게 9년 내로 탄소배출량을 절반 가까이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이른바 ‘빅 오일’(국영석유회사를 제외한 세계 6대 석유회사)에서는 안팎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더치뉴스 등 현지매체는 2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지법 라리사 알윈 판사가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 석유업체 로열더치셸 그룹(셸)에 순탄소배출량을 2030년 연말까지 2019년 대비 45% 줄일 것을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알윈 판사는 “셸이 지금 현재 배출 감축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셸이 법정에서 설명한 계획은 구체적이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셸은 자체적으로 2035년까지 탄소배출을 20% 정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법원 명령으로 목표치를 2.5배 높여 잡게 됐다. 미국 CNBC방송은 “셸은 2019년 매출액이 3449억 달러(385조4900여억 원)를 넘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이라며 “단일 기업으로 탄소배출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친구들’ 네덜란드 지부인 밀리우데펜시와 시민 1만7200여명은 2018년 셸의 현재 사업모델이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밀리우데펜시는 소장에서 “셸의 사업모델은 인권을 위협하고 삶을 위험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판결 직후 양측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원고 측 로저 콕스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역사적인 전환점”이라며 “다른 대규모 탄소 배출 다국적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셸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빅 오일을 위시한 주요 석유회사들은 안팎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 엑손모빌은 지난해 12월 기후변화 대응을 주장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 넘버원’의 요구대로 이사 2명을 교체했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는 “변화에 대한 열망을 알고 있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미국 석유회사 쉐브론 주주총회에서도 비슷한 시기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판결이 주요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하는 신호탄이 됐다고 분석했다. 톰 웨쳐 옥스퍼드대 교수는 “탈탄소화 계획은 ‘정해진 미래’”라며 “주주들까지 변화에 대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