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에 민감한 개인주의자 MZ세대 울린 ‘귀칼’

입력 2021-05-26 18:16
에스엠지홀딩스 제공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노재팬 운동이 2년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흥행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주 소비층인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가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 개인주의적 소비를 지향하면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벽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귀멸의 칼날’에 녹아있는 ‘공정’의 문제의식도 MZ세대의 마음을 건드렸다.

‘귀멸의 칼날’도 노재팬 운동의 타깃이 된 적이 있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지난 3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TV판 1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탄지로의 귀걸이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 욱일기와 유사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큰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TV시리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귀멸의 칼날)은 지난 16일 관객 200만명을 넘어섰다. 25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 205만명을 넘어서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극장가 불황에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만화 단행본 완결판 ‘귀멸의 칼날23’도 지난달 26일 출간 이후 4주간 종합 1위를 차지하는 등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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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의 장기 흥행 배경에는 애니메이션 주 소비층인 MZ세대가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영화 ‘귀멸의 칼날’의 관람객 중 20대가 55%, 30대가 20%를 차지할 정도로 MZ세대의 비중이 높다.

이들도 노재팬 운동에 참여하지만, 혼자 즐기는 제품과 콘텐츠에선 불매운동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아사히맥주와 유니클로는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반일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내가 즐기고 싶은 것은 즐긴다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귀멸의 칼날’에 담긴 주제의식도 ‘공정’에 민감한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악의 무리인 혈귀는 불공정의 표본이다. 불사의 몸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남발한다. 그러면서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거나 “넌 강하니 혈귀가 되라. 넌 약하니 죽어도 싸다”고 외친다. 혈귀와 전쟁에서 최전선에 선 귀살대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전집중호흡’이라는 극한의 수련으로 혈귀와 가까운 능력을 낼 뿐이다. 가장 강한 귀살대원인 ‘주’는 혈귀가 되기보다 인간을 위해 자기 한 몸을 던지는 선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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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만화의 전형인 ‘능력’을 현실 세계의 ‘자본’으로 환원하면 새로운 시야가 펼쳐진다. 혈귀의 행태는 상속받은 부자가 갑질을 하는 모습과 닮아있고, 귀살대 우두머리 ‘주’의 모습은 자수성가한 자본가의 사회 환원가 유사하다.

주인공 탄지로 일행의 여정에는 우울함과 핏빛이 가득하다. 평범한 인간인 탄지로는 가족이 혈귀에게 죽임을 당하자 귀살대원이 되길 결심한다. 하나 남은 여동생 네즈코는 혈귀로 변해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도 찾아야 한다. 무거울 수 있는 극을 풀어주는 건 탄지로의 친구들이다. 어딘가 모자란 듯 능청을 부리는 젠이츠와 이노스케는 탄지로와 함께 투덜거리면서 같은 길을 나선다. 이들의 여정은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얻을 기회도 줄어들고,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황에 놓인 MZ세대에게 일종의 위로를 준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