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가 형제의 운명을 갈랐다. 군부 핵심 인사인 형은 쿠데타로 고위직에 올랐고, 베테랑 민주화운동가인 동생은 반군부 투쟁 중 잡혀가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다.
현지매체 이라와디는 25일 오랜 기간 민주화운동을 해온 꼬 소 모 흘라잉(53)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 22일 미얀마 바고 지역의 자웅 투 마을에서 군부 정보원의 밀고로 보안군에 체포됐다. 목격자들은 체포 당시 군경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수차례 심하게 내리쳤다고 전했다. 그의 아내는 이틀 뒤 남편이 숨졌다는 사실을 전화로 통보 받았다.
꼬 소 모 흘라잉의 지인들은 그가 굳은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을 당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8년부터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군사정권에 저항한 첫 학생 무장단체인 전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에서도 활동했으며, 이후 아웅산 수치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체포돼 13년간 수감되기도 했다. 그는 석방 후에 바고 지역에서 지역 개발과 주민 복지를 위해 힘쓰며 아이들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해왔다.
반면 그의 친형인 딴 흘라잉 장군은 유혈진압을 자행하고 있는 군부 핵심 인사다. 그는 지난 2월 1일 쿠데타 이후 내무부 차관 겸 경찰청장으로 승진했다. 이라와디는 형이 쿠데타 이후 군경이 미얀마 국민을 상대로 벌인 잔인한 유혈진압의 원흉 중 한 명이라고 전했다.
동생의 친구인 툰 툰 조 우는 페이스북을 통해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 중 한 명은 우리의 동지가 됐고, 한 명은 군견이 됐다”고 말혔다. 그는 “88년 두 사람은 카렌주 전장에서 서로 싸웠다”며 “당시 그의 형은 동생을 죽이겠다고 했다”고 했다. 88년 8월 8일 양곤에서 일어난 ‘8888 민주화 항쟁’ 이후 형이 반군부 무장투쟁 세력인 버마학생민주전선에 합류한 동생의 머리에 총을 겨눴던 것이다.
동생과 함께 옥살이를 했던 한 민주화운동가는 이라와디에 “그의 가족은 군부 출신이었지만, 그는 평생 시위 참여부터 학생 무장단체 활동에 이르기까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걸 다 했다”면서 “동료를 잃어 너무 슬프다”고 추모했다.
최근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유혈진압 속에 고문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전날까지 군경 폭력에 사망한 이는 827명이며, 이 중 최소 20명은 군부의 고문에 의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