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위기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공시된 국내 LCC 4개사의 1분기 실적을 보면 3개사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코로나19 위기의 타개책으로 여겨졌던 화물 운송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연말쯤엔 모든 LCC가 완전 자본잠식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에어부산 등 LCC 상장사 4개사 중 진에어와 제주항공, 에어부산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잠식은 기업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자본총계(자기자본)가 납입자본금보다 적은 상태를 말한다. 진에어의 자본잠식률이 42.4%로 가장 높았고, 에어부산(34.4%)과 제주항공(28.7%)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지난 3월 사모펀드로부터 800억원의 자금을 투자 받은 티웨이항공만 자본잠식을 면했다.
적자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자기자본이 줄어든 탓에 부채비율도 크게 확대됐다. 부채비율이 1793.2%로 가장 높았던 진에어는 전년 동기보다 5배가량 늘었다. 에어부산도 부채비율이 1752.2%를 기록해 진에어와 비슷했다. 티웨이항공은 886.8%, 제주항공은 705.2%로 LCC 4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1000%를 넘었다.
LCC들도 직원들이 돌아가며 휴직을 하고, 무착륙 관광비행이나 국내선 운항을 늘리는 등 업계 나름의 자구책을 펼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다 국제선 여객 부진의 탈출구로 여겨졌던 화물 운송량도 대한항공을 제외하고는 모두 코로나19 전인 2019년보다 감소했다. 국토교통부가 밝힌 올해 1~4월 화물 운송량을 보면 진에어는 2019년 3만1000t에서 9700t으로, 제주항공이 3만5000t에서 7000t, 티웨이항공 2만1000t에서 7000t, 에어부산은 1만9000t에서 7700t으로 모두 줄어들었다. 화물기가 없는 LCC는 여객기 화물칸에 화물을 싣고 여객기를 운항할 때 화물을 함께 운송했지만, 국제선 운항 자체가 대폭 줄어들면서 화물 운송량이 늘어나지 못했다.
또 LCC 매출의 70~80% 가량이 나오는 국제선 여객이 올해 안에는 코로나19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조차 요원하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지난 3월 ‘항공산업 지원 및 재도약 방안’을 발표하면서 LCC를 대상으로 2000억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이날까지도 “기업의 자금 상황을 모니터링 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또 오는 6월 말 종료되는 유급휴직 고용유지지원금의 지원 기간 연장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정부의 기간산업안정자금 역시 LCC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자율이 6~7% 수준으로 높은데다 총차입금 5000억원 이상, 근로자 300명 이상, 지원 후 6개월간 고용 90%를 유지 등의 지원요건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안기금 신청을 하고 싶어도 대상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지난해 LCC 중 유일하게 기안기금을 받았던 제주항공은 현재 2차 기안기금 신청을 위해 지원 주체인 KDB산업은행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없이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연내에는 모든 LCC가 완전 자본잠식(자본금이 100% 잠식된 것) 상태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자금수요를 다 파악해놓고도 여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제주 노선엔 사람이 몰리니 업계 상황이 괜찮아보이는 착시가 있는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하반기엔 더 심각한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려대로 LCC들 중 완전 자본잠식에 빠지는 경우가 나온다면 아주 심각한 고용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고용유지지원금을 포함해 저리의 긴급 지원금을 빠르게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정부가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