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보고해야 할 사람들에게 다 공유했다.” 굳은 표정의 파울루 벤투 축구 남자 국가대표팀(이하 성인대표팀) 감독은 기자단을 쳐다보지 않은 채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앞서 올림픽을 앞두고 양보를 요청한 김학범 23세 이하 올림픽 국가대표팀(이하 올림픽대표팀)과 이야기를 나눴는지 재차 물었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성인대표팀 벤투 감독과 올림픽대표팀 김 감독은 24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연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각각의 소집명단을 발표했다. 성인대표팀은 다음달 카타르월드컵 2차 지역예선을, 올림픽대표팀은 7월 도쿄올림픽에 앞서 다음달부터 치를 평가전을 대비한 명단이다. 이날 회견에서는 선수 선발을 놓고 두 감독의 입장 차가 드러났다.
이번 명단은 발표 전부터 세간의 관심사였다. 두 감독이 원하는 선수가 겹쳐서였다. 김 감독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6월 소집 기간이 최종명단보다 중요하다”면서 “월드컵 2차 예선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올림픽이라는 세계대회를 앞두고 있다. ‘통 큰 양보’를 부탁한다”고 요청했다. 두 감독은 지난 22일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 사이 ‘동해안 더비’를 함께 참관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통 큰 양보’는 없었다. 두 팀 모두에 뽑힌 경험이 있는 울산 미드필더 원두재와 미드필더 이동경은 결국 성인대표팀 명단에 올랐다. 포항 소속인 지난해 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 송민규는 올림픽대표팀에 먼저 뽑혔지만 이번에 성인대표팀의 첫 부름을 받았다. 단 이동경과 함께 성인대표팀에 올랐던 울산 측면 공격수 이동준, 한일전에서 뛴 스페인 라리가 발렌시아 미드필더 이강인은 올림픽대표팀으로 갔다.
김 감독은 벤투 감독에 이어 진행된 회견에서 “성인대표팀 결정을 다 수용한다”고 입을 열었다. “문화 차이가 있는 듯하다. 유럽에선 올림픽대표팀 관련해 말을 꺼낼 상황도 아니다, 무슨 소리냐 한다”고 말을 이은 김 감독은 그러면서도 “옆나라 일본은 와일드카드를 포함해 완전체로 평가전을 준비한다. 일본을 그동안 이겨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부러워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좀 부럽다”며 볼멘소리를 보탰다.
이번 성인대표팀 명단에는 처음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 눈에 띄었다. K리그에서 환상적인 프리킥과 중거리골로 주목받은 수원 삼성의 ‘왼발 스페셜리스트’ 이기제를 비롯해 같은 팀에서 ‘매탄소년단’ 일원으로 불리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2002년생 공격수 정상빈이 발탁됐다. 지난 시즌 리그 도움왕인 포항 측면 수비수 강상우도 대표팀 발탁의 기쁨을 누렸다.
올림픽대표팀에는 대부분 소집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뽑혔다. 김 감독은 “(선발된 선수 중) 좌우 풀백 중 왼쪽과 중앙 수비는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번 평가전에서 기대를 채우지 못하면 와일드카드를 뽑겠다는 경고다. 김 감독은 “부상이 있어 명단에 못 부른 선수가 있다”면서 “그 외는 변수가 없으면 현 선수들 중 최종명단이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인대표팀은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다음달 5일 투르크메니스탄, 9일 스리랑카, 13일 레바논과 월드컵 2차예선을 치른다. 본래 예정된 건 4경기였지만 북한의 중도 불참으로 1경기가 줄었다. 올림픽대표팀은 31일 소집 뒤 일본과 평가전을 치르고 도착할 가나 올림픽대표팀과 다음달 12일과 15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사흘 간격으로 평가전을 치른다.
파주=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