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 인부들이 돌을 캐는 도중 나비 요정을 만나 벽 안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바다 세계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이야기만 보면 다소 단순하지만 약 50m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가 융합된 공연이라면? 약 30분간 어두운 숲속 절벽에 미디어아트가 투사되는 가운데 LED 의상을 입은 퍼포머들의 아크로바틱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공연은 경기도 동북부 포천시의 포천아트밸리 내 호수공연장에서 펼쳐지는 프로젝트 날다(대표 김경록)의 ‘벽 안의 바다’. 국내 공중 퍼포먼스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프로젝트 날다가 2017년 초연한 뒤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온 작품이다.
최근 국내 축제에서도 자주 볼 수 있게 된 공중 퍼포먼스는 기구, 크레인과 줄 등을 활용하는 공중서커스부터 암벽 등반 장비를 활용해 고층 건물의 외벽이나 대형 패널, 암벽에서 버티컬 퍼포먼스 등을 총칭한다. 공중에서 펼쳐지는 만큼 기본적으로 아크로바틱과 판타지의 요소가 강하며 시각적인 매력이 크다.
올해 경기문화재단 지원으로 포천아트밸리 상주단체가 된 프로젝트 날다는 버티컬 퍼포먼스인 ‘벽 안의 바다’를 5월과 10월 두 달간 토요일마다 선보인다. 22일 관람한 ‘벽 안의 바다’는 제작비 문제로 쉽지 않아 보이지만 출연진을 추가해 절벽 아래부터 입체적으로 퍼포먼스를 구성하면 훨씬 임팩트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포천아트밸리가 조성된 포천시는 원래 국내 최대의 화강암 생산지로 유명했다. 1970~80년대 청와대, 국회의사당, 대법원 등 서울에 지어진 주요 건물에는 포천의 화강암이 많이 쓰였다. 하지만 화강암 생산이 감소해 운영을 중단한 채석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폐채석장은 원래 산림법에 따라 복구해야 하지만 포천시 신북면의 한 폐채석장은 경비 문제로 복구되지 못했다. 이에 포천시가 2003년 협의를 통해 방치됐던 폐채석장을 인수한 뒤 경기도의 북부특화사업 지원을 받아 공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 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예술창작 벨트화 사업’에 선정되면서 국내 최초로 폐채석장이 친환경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사례가 됐다.
사실 폐채석장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해외에서 상당히 긴 역사가 있다. 유럽의 권위 있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1985년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이 아비뇽에서 15㎞ 떨어진 불봉 채석장에 무대를 만들고 ‘마하바라타’를 선보인 것이 전환점이 됐다. 흉물스럽다고 생각했던 폐채석장이 매력적인 공연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후 아비뇽 페스티벌이 불봉 채석장을 매년 축제 기간 공연장으로 사용하게 된 이후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에서도 폐채석장을 공연장으로 바꾼 장크트 마르가레텐 오페라 페스티벌과 달할라 음악 페스티벌이 각각 1996년과 1997년 시작됐다. 또 폐채석장은 대규모 미디어아트 전시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2년 프랑스 레보 드 프로방스 지역에 만든 ‘빛의 채석장’이 꼽힌다.
전체면적 12만㎡(5만 평)의 포천아트밸리는 전시관, 공연장, 과학관 등을 갖추고 있다. 공연장의 경우 병풍처럼 놓인 40m 높이의 화강암 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산마루공연장, 50m 높이의 절벽과 호수 사이에 설치된 호수공연장이 있다. 특히 호수공연장은 절벽을 활용한 영화 상영과 소리울림 현상을 이용한 독특한 공연이 가능한 수상 공연장이다.
포천아트밸리는 국내에서 폐채석장들의 활용에 큰 전환점이 됐다. 이후 여러 폐채석장이 공원이나 복합문화공간 등으로 바뀌었거나 바뀔 계획이다. 특히 폐채석장에 채석으로 인해 깎아지르는 절벽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프로젝트 날다의 포천아트밸리 공연처럼 버티컬 퍼포먼스와 미디어아트의 무대로 좀 더 활발하게 사용되면 좋을 듯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