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골 가리려고”…美고교 졸업앨범 ‘황당’ 포토샵

입력 2021-05-24 11:29 수정 2021-05-24 13:41
왼쪽은 원본 사진, 오른쪽은 학교가 포토샵한 사진. 트위터 갈무리

미국의 한 고등학교가 졸업앨범에서 여학생 80여명의 가슴골을 포토샵으로 가려 논란이 일고 있다. 반면 몸에 딱 붙는 수영복 차림의 남학생들 사진은 그대로 뒀다. 이처럼 성별에 따른 이중적인 잣대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 측의 사과를 요구하고 수정 전 사진으로 졸업앨범을 교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3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존스 카운티에 있는 바트람트레일 고교의 여학생들이 졸업앨범을 열어보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헛웃음을 지었다고 보도했다.

왼쪽은 원본 사진, 오른쪽은 학교가 포토샵한 사진. 트위터 갈무리

최소 80명의 여학생이 자신이 촬영할 때 입었던 상의의 가슴 부위가 부자연스럽게 달라져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학교 측은 여학생들의 사진에서 목선이 파여 드러났던 가슴골을 포토샵을 이용해 전부 가려놨다. 상의를 일부 잘라내 붙이거나 검은색으로 칠하는 등 하나같이 노출된 가슴 부위를 엉성하게 수정했다. 학교 측은 심지어 해당 학생들에게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편집한 사진을 졸업앨범에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은 원본 사진, 오른쪽은 학교가 포토샵한 사진. 트위터 갈무리

학교 측은 여학생들의 이런 복장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문제의 학교는 공립으로 세인트존스 카운티의 복장 규정을 따르고 있다. 이 규정은 여학생이 ‘노출이 심하거나 주의산만한 옷은 입을 수 없다’고 돼 있다.

포토샵 작업을 담당한 학교 관계자는 “복장 규정상 행동 강령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는 학생의 사진은 졸업앨범에 담을 수 없다”며 “이 때문에 포토샵은 모든 학생을 졸업앨범에 넣기 위한 해결책이었다”고 해명했다.

왼쪽은 원본 사진, 오른쪽은 학교가 포토샵한 사진. 트위터 갈무리

하지만 피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복장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학부모인 에이드리언 바틀렛씨는 “딸이 졸업 사진을 찍을 때 입은 옷은 지난 1년간 자주 입었지만, 학교로부터 복장 규정 위반이라는 말을 들은 적 없는 옷”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 측이 딸의 사진을 편집하는 바람에 오히려 온라인상에서 놀림과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고 분개했다.

또 문제의 학교 졸업앨범에는 남학생의 노출 복장은 그대로 담겼다는 의혹이 제기돼 성차별 문제로 번지고 있다. 피해 학생인 라일리 오키프는 “교내 수영팀의 남학생들이 몸에 딱 달라붙는 타이트한 수영복을 입고 찍은 졸업 사진은 그대로 뒀다”면서 “성별에 따른 이중 잣대로 인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계속되는 논란에 학교 측은 “졸업앨범을 반환할 경우 비용을 환불해 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정 전 원본 사진을 담은 졸업앨범을 다시 제작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논란이 된 포토샵으로 가슴 부분을 가린 사진. 트위터 갈무리

미 플래글러대의 로나 브레이스웰 교수는 현지 매체를 통해 “학교의 이런 조치는 어린 소녀들에게 여성의 신체에 보기 흉하거나 부적절한 게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해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여성이 대중 앞에 설 때 여성의 몸에 반응하는 낡은 관행”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문제의 졸업앨범은 트위터에서도 화제다. 누리꾼들은 포토샵 전과 후의 사진을 공유하며 “원본 사진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이 학교는 대체 몇 세기에 살고 있냐”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