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조규성이 안양에 ‘군복환향’ 하던 날

입력 2021-05-24 06:30
조규성(오른쪽)이 23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C 안양과의 경기에서 볼을 키핑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규성아 살살해.” “규성아 이건 아니지 친정팀 상대로.”

23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2 FC 안양과 김천 상무의 경기. 전반 1분 김천의 조규성이 발재간으로 수비 3명을 농락한 뒤 페널티 박스 우측면에서 낮고 빠른 슈팅으로 안양 골문을 위협하자 관중석 곳곳에선 이런 질타가 터져 나왔다.

‘우리 선수’를 향한 안양 팬들의 애정이 느껴지는 질타였다. 조규성은 2019시즌 안양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해 그해 리그 33경기 14골 4도움을 올리며 안양의 K리그2 플레이오프행을 견인했다. 수려한 외모와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부지런한 활동량에 안양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리곤 다음 시즌 안양에 역대 최고 이적료를 안기고 K리그1 전북 현대로 이적했다.

전북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김천으로 입대한 조규성은 이날 타 팀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자신의 날개를 펴게 해준 친정팀 경기장을 방문했다. “경기장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원정팀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해서 어색했는데, 안양 팬들 앞에서 경기를 뛸 수 있어 설레고 흥분됐다”는 조규성의 말처럼, 안양 구성원들도 프로 선수로서, 올림픽에 나설 대표 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한 그를 두 팔 벌려 반겼다.

2019시즌 안양의 전력강화부장으로 재직했던 이우형 안양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전 기자들과 만난 그는 “제 3자를 통해 골 넣거나 어시스트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조규성에) 전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내 “안양 있을 때는 신인이라 급해 보이기도 했고, 볼 소유 능력, 경기 템포 조절 능력이 부족했는데 전북 거쳐 김천 가면서 그런 부분이 나아졌다”며 “이제 스스로 템포 조절도 하고 문전 앞에서 찬스가 왔을 때 여유 있어 보이는 점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칭찬했다. 김태완 김천 감독은 “규성이가 집중력도 높아지고 득점도 하고 있다. 오늘 안양과 경기라 상대를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조규성 선발 출전의 이유를 설명했다.

안양 시절 조규성의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친정팀 팬들의 ‘절규’에도, 조규성은 이날 누구보다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창출했다. 볼을 잡으면 지체 없이 슈팅으로 연결해 양 팀 최다인 6개의 슈팅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규성은 “코너킥이나 몸싸움하고 그럴 때 안양 팬들이 ‘살살 뛰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면서도 “경기장에선 제가 해야 하는 본분이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하려 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이날 그라운드에 서 있던 조규성은 입대한 뒤 몸집이 한 층 커진 것 같은 인상을 줬다. ‘입대한 뒤 살이 찐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거대해진 몸집은 안양 시절부터 실력 향상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데 정평이 나 있던 조규성이 입대 전 한 달 동안 진행한 헬스 트레이닝 덕이었다. 조규성은 “1부에서 뛰는데 몸싸움 버텨주는 게 미흡하다고 생각해 힘을 길러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다”며 “전북에서 1차 동계훈련이 끝난 뒤 3월 입대 전 1달 동안 헬스하면서 근육량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조규성은 안양 관계자가 “포스트플레이 면에서 너무 발전한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볼 탈취를 위한 헤더와 몸싸움에서 확연히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비록 양 팀 골키퍼들의 선방쇼에 조규성은 3경기 연속골에 실패했지만, 김천은 전역자 발생으로 스쿼드 인원이 변경된 뒤 치른 첫 원정에서 승점 1점을 챙길 수 있었다.

오는 7월 열릴 2020 도쿄올림픽 멤버로 뽑힐 가능성이 높은 조규성이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오륜기가 아닌 국방색이 가득 채우고 있다. 아직 이등병에 불과하지만, 갓 입대한 일반병들이 그러하듯 부질없이 전역 디데이(D-day)를 세고 있는 그다.

“아직 이병이라 아침에 할 일이 많아요. 그래서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가는 것 같아요. 아직 (전역이) 많이 남긴 했지만, 500일이 언제 깨지나 했는데 금세 480일대로 진입했더라고요(웃음).”

안양=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