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 직할시 중 하나인 충칭(重庆)은 서부 대개발의 거점이다.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잇는 ‘일대일로’와 동부 연안의 상하이에서 서쪽 내륙까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창장(長江) 경제벨트’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다.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이 15년 전 ‘중국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길은 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듯 서쪽 내륙은 동부에 비해 여전히 발전 수준이나 인프라가 취약하다. 그러나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있는 도시가 충칭이다. 전 세계 제조업 공장이 몰려 있는 충칭은 이제 물류, 정보기술(IT), 인공지능(AI) 기업을 공격적으로 유치하면서 ‘충칭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충칭은 중국 31개 성·자치구·직할시 중의 하나지만 면적은 8만2400㎢로 한국의 80%, 인구는 3124만명에 달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초기 서남 지역의 중심지였다가 쓰촨성 관할시로 편입돼 한동안 발전이 더뎠다. 그러다 1997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직할시로 승격됐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충칭의 올해 1분기 GDP는 5995억위안(약 105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2%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15.4% 성장했다.
유럽·러시아·동남아로 뻗어나가는 물류 허브
일대일로와 창장 경제벨트가 지나는 충칭의 지리적 이점을 십분 살린 곳이 궈위안강(果园港) 국제물류단지다. 충칭시 정부 초청으로 지난 19일 방문한 물류단지에는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었다. 장강 상류 양강신구에 위치한 이곳은 2019년 9월 국가급 물류 허브로 지정됐다.
20㎢ 부지에 들어선 궈위안강 국제물류단지는 충칭 장베이 국제공항에서 25㎞가량 떨어져 있다. 인근에 철도 화물터미널과 도시 궤도선이 있어 교통 여건이 좋다. 서북쪽으로 중국 62개 도시를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중국·유럽국제철도, 북쪽으로는 중국·몽골·러시아를 연결하는 국제철도, 중국 11개 성·시를 지나는 장강황금수도, 아래로는 94개국·248개 항구에 도달할 수 있는 육해신통로가 있다. 5000t급 선착장 16개를 갖췄고 연간 물동량은 3000만t에 달한다.
탕웨이둥 궈위안강 국제물류단지건설발전유한공사 부총경리는 “운송 방식이 다양해 가장 적합하고 저렴한 루트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점”이라며 “과거 상하이를 거치면 운송에 한 달 이상 걸렸을 일이 10여일로 단축됐다”고 말했다.
전세계 노트북 4대 중 1대는 ‘made in 충칭’
충칭시 샤핑바구에 위치한 시융(西永)마이크로전자산업단지는 세계 최대 노트북 생산 기지다. 2020년 기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SK하이닉스 140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2019년 대외 수출액은 2578억위안(약 45조원). 전년보다 24.7% 늘었다. 2005년 시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시융마이크로전자산업단지 개발유한공사가 설립된 이래 제조업의 디지털화, 네트워크화, 지능화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시융단지에선 노트북, 스마트폰, 프린터, 오디오, 착용 가능한(웨어러블) 각종 기기들이 생산된다. 그중에서도 노트북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충칭에서 유럽 독일까지 이어지는 국제철도 노선을 통해 ‘메이드 인 충칭’ 노트북이 유럽에 수출되고, 유럽 자동차가 중국으로 들어온다.
시융단지에는 입주 기업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혁신센터와 주요 대학과 연계된 연구원도 들어서 있다. 이공계 박사 과정 학생들을 선발해 학비는 물론 기숙사와 연구 시설을 제공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화웨이 누른 ‘오포’…2024년 충칭에 세계 최대 생산기지 구축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가 미국 제재로 주춤하는 사이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파고든 브랜드가 있다. ‘오포’(OPPO)다. 2001년 설립된 오포는 주로 MP3를 만들다가 2008년 처음 휴대전화를 생산했다. 이후 저가 스마트폰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더니 지금은 제품군을 다양화해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오포는 올해 1분기 중국 시장에서 샤오미에 이어 점유율 22%로 2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시장에선 삼성, 애플, 샤오미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지난 21일 위베이구 스마트생태과학원에 위치한 오포 공장을 방문했을 때 조립 라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로봇 팔이 스마트폰 메인보드에 각종 칩을 장착하고 소프트웨어를 내려받는 등 과정 전반이 자동화되어 있어서다. 오포 관계자는 “2024년 공장 조성 공사가 모두 끝나면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생산 기지이자 물류 센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포 공장에는 현재 8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직원 숙소동이 따로 있고 그 안에 마트, 편의점, 미용실 등 편의 시설이 마련돼 있다.
제조업 넘어 ‘미래 산업’ 유치에 사활
충칭에 있는 기업인들은 최소 10년간 지금의 고속 성장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임금과 토지 비용 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제조업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충칭은 반도체, AI, 로봇 등 미래 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반도체 회사를 끌어들이는 데 적극적이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도 최근 충칭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칭은 2019년부터 매년 중국서부국제투자무역상담회를 열고 있다. 지난 21일 충칭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제3회 서부국제무역투자상담회는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개막식에는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하오밍진 상무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에선 총리 재임 기간 충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막식 행사로 열린 아시아기업대회에서 화상으로 축사 메시지를 전했다.
이 전 대표는 “충칭은 중국 일대일로와 서부 대개발의 요충지”라며 “연평균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중은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서로 도우며 오늘에 이르렀다”며 “앞으로도 한·중이 함께 성장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충칭=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