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선언 꺼리던 美, ‘대만’ 받고 성명에 싱가포르합의와 병기했다

입력 2021-05-23 17:38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는 싱가포르 합의와 판문점선언을 병기함으로써 북핵 협상에서의 남북·미 3자 구도를 인정받았다. 대신 양국 정상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대만’을 언급하고 반중 안보협의체인 ‘쿼드’도 명시하는 등 미국의 대중견제 동참 요청을 일정부분 받아들였다.

우리 정부는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함께 가야 한다는 기본 입장에 따라 정상회담 공동성명 문안 논의하는 초반부터 싱가포르 합의와 판문점선언을 함께 넣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부 관계자는 23일 “북·미 성과물 외에 남북 성과물도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미측에 재차 설명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북·미 성과물인 싱가포르 합의 존중 부분은 인정했으나 남북 정상 간 합의인 판문점선언까지 담자는 우리 정부 제안에는 협상 초기에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 끝에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남북미 3자 구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미국이 받아들였고, 최종적으로 공동성명에 판문점선언이 들어갔다. 이를 계기로 향후 북·미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적극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대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 인권이 빠진 적은 없던 터라 우리 측은 북한 인권을 이번 성명에도 담는 대신 그 수위를 최대한 낮추는 데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7년 6월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공동성명에는 ‘개탄할만한 북 인권 상황’ ‘책임 규명’ 등이 기술됐다.

그러나 이번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에선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하고,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촉진하기로 약속했다”는 식으로 언급됐다. 공동기자회견에서도 북한 인권을 비판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없었다.

대북정책에서 우리의 요구를 수용한 미국은 대중견제 동참을 요구했고, 그 결과 공동성명에 ‘대만’과 ‘쿼드’가 명시됐다. 문 대통령은 “다행스럽게도 그러한(대중견제 동참) 압박은 없었다”면서도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에는 인식을 함께 했다”며 미국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했음을 인정했다.

중국을 직접 겨냥했던 미·일 정상회담과 달리 한·미 정상회담에선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수위 조절이 이뤄졌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대만이 아닌 대만 해협이라는 ‘공해(公海)’에서의 안전 확보 차원의 의미”라며 중국을 타깃으로 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대만 관련 표현은 아주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중국의 반응 또한 미·일 회담 때보다 비교적 차분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미국의 협조를 얻는 목적에서 우리 정부가 한반도 위주 또는 남북 관계 중심이었던 기존의 외교 방향을 한·미동맹의 외연 확장 및 강화로 조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남북경협 등이 포함된 판문점선언을 실현하는 데 있어 미국이 제재 완화에 동의할지 예단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대북정책 이행 과정에서 양국이 보조를 맞출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