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대선 주자들이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추도식에 총집결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일제히 ‘노심(盧心)’ 잡기에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숙원이었던 국가 균형발전과 ‘사람사는 세상’을,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검찰개혁 완수를 강조하며 친노 진영에 구애했다.
차기 대선을 10개월가량 앞두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를 비롯해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한명숙 전 총리 등 여권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지난 6일 봉하 묘역을 참배한 이 지사는 코로나19 방역상황과 도정 등을 고려해 참석하지 않았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앞다퉈 ‘노무현 정신’에 대한 메시지를 내놨다.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자신을 “당신께서 떠나신 후 새로 태어난 수많은 노무현들 중 하나”라 칭하며 “그토록 바라셨던 균형발전과 국민통합의 꿈,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힘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이 지사는 “거리로 따지면 제가 친노라고 하기에는 어렵다”면서도 “정신이나 가치, 살아온 길로 보면 노 대통령과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당 내 친노·친문 세력과 관계를 좁히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부족한 제가 대변인으로서 당신을 모셨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사는 세상’과 ‘균형발전’은 당신의 생애에 걸친 꿈이었다. 당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추도식 전 친노·친문 적자로 꼽히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별도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부산·목포 KTX 신설 등 남부권 균형발전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협력을 다짐했다.
여권 주자들은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강도 높은 비판도 내놨다. 정 전 총리는 “당신(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타살한 세력이 반칙과 특권으로 발호하려고 한다”며 “대한민국의 검찰공화국 전락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했다. 대선 출마를 저울질 중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추도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전 총장을 겨냥해 “정치검찰, 검찰정치는 민주주의의 독초”라며 날을 세웠다.
‘원조 친노’ 이광재 의원은 이날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 의원은 “27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밝혔다. 여의도 중기중앙회는 노 전 대통령이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했던 곳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도 추도식에 참석했다. 김 권한대행은 “통합의 정신이 아쉬운 요즘 노 전 대통령이 남긴 뜻을 우리 이정표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전했다. 보수 야당의 당 대표급 인사가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2016년 이후 5년 만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