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군대 부실 급식 폭로 ‘육대전’ 시민단체 된다

입력 2021-05-23 15:23 수정 2021-05-23 16:34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함안 39사단 부실 급식 관련 게시물. 육대전 제공

‘군부대 부실 급식 사태’를 공론화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이하 육대전)가 100명의 회원을 채워 곧 시민단체 지위를 얻을 예정이다. 군이 장병들의 불만 목소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외부 폭로가 이어졌고, 이걸 통해 변화가 일어나는 걸 목격한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 장병들이 조직적 목소리를 낼 지 주목된다.

육대전은 지난 4일 비영리 민간임의단체 등록을 마친 데 이어 다음 달 초 비영리 민간단체 정식 등록을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육대전은 15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온라인 채널이다.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위해서는 상시 회원 수 100명을 채워야 하고 최근 1년 이상 공익 활동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육대전은 이날 기준 요건을 모두 충족해 정식 등록을 추진키로 했다. 김주원 육대전 대표는 “제보 내용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혼자 내용을 확인하는 게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용기를 내 제보해 준 군 장병들을 위해 시민단체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움직임으로 군 관련 시민단체가 설립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달 18일 한 장병이 육대전에 올린 사진 한 장으로 군 부실 급식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이 장병은 휴가에서 복귀한 뒤 격리된 상황에서 51사단이 제공한 도시락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이 게시글이 도화선이 됐고 육대전에는 소량의 밥과 깍두기 두 쪽만이 담긴 도시락, 생일 케이크 대신 받은 1000원짜리 빵 사진 등 제보가 잇따랐다. 육대전 폭로 이후 국방부는 지난 7일 격리 장병에게 일반 장병과 똑같은 수준의 배식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가 ‘육대전’ 만도 못 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육대전을 운영하는 김 대표 역시 육군 출신의 MZ세대(1994년생)다. 그는 2016년 제대 직후 군 생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소통 공간을 만들었다. 부실 급식 문제 뿐 아니라 특정 부대 운전병 부조리 문제,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 폭로 등이 이어졌다. 김 대표는 “20대 초반의 장병들의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육대전을 활용해) 제보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육대전은 지난해 2월에도 한 차례 부실 급식 관련 제보를 공론화 한 바 있다. 이후 국방부 조사본부 한 수사관이 불쑥 김 대표의 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관련 부대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지만, 예고도 없이 집으로 찾아와 두려움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제보자 보호를 위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민단체 발족을 추진했다. 육대전은 부실 급식 외에도 천식 환자 관리 미흡, 성추행 사건 등 지난달 18일 부실 급식 폭로 이후 현재까지 총 33건을 폭로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시민단체 발족은 청년이 기성세대에 저항한다는 의미에 더해 군에서 억눌린 남성 인권에 대한 개선 요구가 맞물려 폭발적인 시너지를 얻은 것”이라며 “온라인에서 시작한 작은 소통이 거대한 변화를 끌어내는 사회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군을 포함해 모든 조직이 MZ세대의 특성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