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소식통 “한국 정부 요구, 미국이 수용”
판문점 선언, 경의선 철도 연결 등 남북 협력 내용
바이든, 비핵화 없이 “김정은 원하는 것 주지 않을 것”
“과거처럼 안 한다”…트럼프 대북정책도 비판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다. 트럼프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에선 폐기할 수 있었던 ‘철 지난 약속’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겨냥해 “나는 (북한 정권의) 정통성과 같은 국제사회의 인정 등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을 경우 어떠한 선물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22일(현지시간) “한·미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포함된 것은 한국 정부의 요구를 미국 정부가 수용한 결과”라면서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공동성명은 한·미 당국자들의 조율된 메시지”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지 않겠다’고 속내를 밝힌 것이 더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바이든 “외교적 노력 계속”…남북 협력 추진 ‘동력 확보’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양국은 북한과 외교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외교적 문을 계속 열어놓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실용적인 접근 방법을 펼칠 것”이라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협의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담은 공동성명에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한국 정부가 원했던 내용이다.
판문점 선언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합의한 결과물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동해선과 경의선의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 전환 등 남북 협력 방안들이 담겨있다.
판문점 선언을 이어받겠다는 성명 내용을 통해 한국은 남북 교류협력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남북 간 합의인 판문점 선언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것은 남북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한국 정부에 일정한 독자성을 부여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을 약속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존중하겠다는 발표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유인책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카드로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여기에다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북한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권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또 한·미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기로 합의한 대목도 북한의 반발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바이든 “핵무기 약속 있어야…원칙 안 지켜지면 안 만난다”
북·미 대화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은 바이든 대통령이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공을 넘긴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특정한 전제조건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그(김 위원장)가 어떤 약속을 지킨다면 나는 그를 만날 것”이라며 “그 약속은 그의 핵 무기고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국무부가 협상하면서 만든 일부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김 위원장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나는 정통성과 같은 국제사회의 인정 등 그(김 위원장)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김 위원장)가 전혀 진지하지 않았던 것(비핵화)에 대해 더 진지한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것들을 주는 것이 용인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나는 가까운 과거에 행해졌던 것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해 세 차례 김 위원장을 만났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문제 해결의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그는 “나의 (외교안보)팀은 대북 정책 검토의 모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팀과 긴밀히 협의했다”면서 “우리 모두는 현재 상황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우리는 이것(북한 문제)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환상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과거 네 개의 (미국) 행정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서 “이것은 믿을 수 없이 어려운 목표”라고 표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