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술이 깨지 않은 채로 운전해 출근하다 사망했을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사고 전날 상급자와 술을 마신 것이 출근길 음주·과속 운전에 영향을 줬다는 이유에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김국현)는 숙취 상태로 운전하다 출근길에 사고로 숨진 A씨의 아버지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취소 처분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한 리조트에서 조리사로 근무했다. 지난해 6월 9일 A씨는 퇴근 후 주방장의 제안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다, 협력업체 직원이 합석하며 오후 10시50분까지 술을 마셨다. 다음 날 오전 5시쯤 A씨는 상급자의 전화를 받고 출근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고, 주행 중 반대 방향 차로의 연석, 신호등, 가로수를 연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A씨는 도로에 엎드린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수사기관은 A씨의 차량이 시속 약 151㎞로 교차로를 통과하다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혈액감정결과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7%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8월 “고인은 음주 및 과속운전에 따른 범죄행위로 사망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했다. 이에 불복한 A씨의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A씨의 직장 내 지위나 음주운전의 경위를 고려하면 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채용된 지 약 70일이 지난 조리사인 고인이 주방장과의 모임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A씨가 지각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과속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고가 오로지 고인의 과실로 발생했어도,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