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대만해협’ 언급에도 中 “레드라인 지켰다”…미·일 때와는 다른 평가

입력 2021-05-23 10:32 수정 2021-05-23 10:37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가 언급됐는데도 중국은 “한국이 선을 넘지 않았다”고 만족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거론됐을 때 중국 매체가 일본을 향해 ‘중국의 속국’ 운운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중국이 한·미 정상회담 결과 중 경계심을 드러낸 분야는 따로 있었다. 한·미 양국이 반도체 공급망 구축과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협력하기로 한 대목이다. 중국은 한국을 반중 노선에 끌어들이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 다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뤼차오 중국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소장은 23일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한·미 공동성명 내 대만해협 언급은 예상된 것이었다”며 “한·미가 중국 문제에 관해 도달할 수 있는 최대 합의점이었다”고 비교적 후한 평가를 내놨다. 글로벌타임스는 문 대통령이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고 동시에 원하는 것을 얻어냄으로써 미·중 관련 이슈를 다루는 데 한국의 원칙을 견지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을 대중 억제 움직임에 동참시키려는 미국의 시도는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미 정상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가 직접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관영 매체는 한·미 정상회담 전부터 공동성명에 담길 대중 표현 수위에 주목해왔다.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압박에 한국이 원칙을 지키는지 판가름할 시금석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대만 정책과 관련해 한국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을 압박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압박은 없었다”며 “다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질문이 나오자 문 대통령이 답하기 곤혹스러운 사안임을 이해한다는 듯 “행운을 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미·일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차이가 있다면 미·일은 대만해협 외에도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문제,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불법 해상 활동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당시 중국 관변 학자들은 일본을 ‘미국의 속국’이라고 칭하며 비난을 쏟아냈었다.

하지만 똑같이 대만해협을 언급한 한국에 대해선 ‘한국이 미국 압박에 맞서 선방했다’는 식의 평가를 내린 것이다. 우융성 중국외교학원 교수는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포기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 대화에 동참할 의지가 없을 수도 있다”며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가장 큰 무역파트너이자 한반도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신 중국이 주목한 건 한·미 양국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협력하기로 한 점, 미국이 한국군 55만명 장병에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점이다. 중국 매체는 이러한 조치가 한국이 대중 봉쇄 정책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미국의 전술이라고 평가했다.

뤼 소장은 “미국은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다른 접근 방식을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