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미국 압박없었다”…중국 거론 않고 중국 ‘간접’ 때리기

입력 2021-05-23 04:05 수정 2021-05-23 12:13
한미 정상, ‘중국’ 국가이름 거론 안해
대신, 중국 아킬레스건 ‘대만 해협’·‘남중국해’ 언급
외교소식통 “한국, 미국 쪽 기울었다고 보기 힘들어”
文대통령 중국 관련 질문받자 바이든 “굿럭”
중국 인권문제 빠져…미일 정상회담 비해 강도 낮아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도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한·미 정상은 ‘중국’이라는 국가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한 것이다.

그러나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대만 해협(Taiwan Strait)’이라는 표현으로 대만 문제를 거론했다.

다만, 이 역시 ‘대만’이라고 직접 언급하지 않고, ‘대만 해협’이라는 단어로 살짝 비켜갔다. 하지만 한·미 정상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간접적으로 건드렸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이에 대해 한국이 미·중 갈등 상황에서 미국 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미국 워싱턴에선 아직 한국이 미국 편을 확실히 들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더 우세하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22일(현지시간) 국민일보에 “코로나19 백신 협력 등 미국으로부터 도움 받을 것이 많은 데다 미국이 워낙 강력하게 중국 견제를 요구해 한·미가 이 정도 선에서 타협을 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에 대해 미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중국 문제에 대해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한국이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은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렸다. 이후 한·미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고,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이 중국 관련 압박했냐’ 질문에 文대통령 “압박 없었다”

한·미 정상이 참여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 ABC방송의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이 기자는 ‘중국의 대만 정책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더 강경한 스탠스를 취할 것을 압박했는지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에 동참할지 여부가 미국 언론의 주요 관심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문 대통령이 답을 하기 전에, 바이든 대통령은 “행운을 빈다(Good luck)”고 낮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압박은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다만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했다”면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양국이 그 부분에 대해서 함께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도 중국과 대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대만 해협’과 ‘양안’이라는 준비된 답변을 꺼냈다는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내용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듣고 있다. 뉴시스

‘대만 해협’·‘남중국해’…중국 직접 비판 대신 ‘간접’ 때리기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겨냥한 문구들이 포함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대목이다. 한·미가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합법적인 정부는 오직 하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대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자신들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다. 중국이 대만 얘기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한·미 공동성명에는 “우리는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역시 남중국해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불법적인 행동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의도다.

공동성명에 포함된 “한·미는 쿼드를 포함해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문구도 중국을 압박하는 내용이다. 쿼드는 중국 견제 목적으로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이 만든 협력체다. 다만, 한국이 쿼드에 직접 참여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해외 투자에 대한 면밀한 심사와 핵심기술 수출통제 관련 협력의 중요성에 동의했다”고 밝힌 부분도 중국을 정조준한 것이다. 반도체·전기 자동차 배터리·인공지능(AI)·5G 등에 대한 중국의 기술 탈취와 핵심 기술의 중국 이전 봉쇄를 염두에 둔 내용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일 정상회담 직후 열렸던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미·일 정상회담에 비하면 중국 비판 강도 낮아

한국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이 확연히 미국 쪽으로 돌아섰다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한·미 정상은 중국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레드라인’은 넘지 않았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China)’이라는 표현을 딱 한번 썼다. 이것도 국가 이름 ‘중국’을 거론한 것이 아니고, ‘남중국해(South China Sea)’를 언급할 때 불가피하게 꺼냈다.

지난 4월 16일 미·일 정상회담 이후 나온 공동성명과 비교해도 이번 한·미 공동성명의 수위는 낮다.

당시 미·일 공동성명에는 “우리는 홍콩과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는 중국이 최근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권 문제가 빠졌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한·미 공동성명에 포함된 중국 비판 문구들은 대부분 바이든 행정부가 반복적으로 밝혔던 내용이며, 원칙론적인 얘기들”이라며 “한국은 중국을 의식해 피해나갈 탈출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