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조력 없이 항소 결정 스스로 한 정인이 양모

입력 2021-05-21 15:59 수정 2021-05-21 16:54
정인이 양부모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 14일 시민들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청사 앞에서 호송차를 향해 규탄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한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 장모(35)씨가 변호인의 조력 없이 스스로 판단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도 즉각 항소장을 제출하며 항소심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분이 크고 향후 아동학대 관련 처벌에 대한 기준이 될 대표성 있는 사건 만큼 장씨에 대한 살인죄가 항소심에서도 인정될 수 있도록 공소 유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1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주위적 공소사실 살인, 예비적 공소사실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장씨는 이날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앞서 지난 1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이상주)는 장씨에게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날은 장씨와 검찰이 항소를 제기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장씨는 변호인의 별다른 조력 없이 스스로 항소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장씨 변호인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심 선고 이후 재판부 판단에 대해 장씨에게 설명을 했고, 항소 여부는 (장씨가) 알아서 결정하겠다고 해 별다른 조언을 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재판부는 장씨가 정인이의 복부를 최소 2회 이상 발로 밟아 강한 둔력을 가하는 등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췌장 절단과 장간막 파열이 피해자의 사망 당일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방어 능력이 없는 16개월 아이의 복부를 강하게 밟으면 치명적인 손상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은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예견할 수 있다”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무참히 짓밟은 비인간적 범행인 만큼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었다.

하지만 장씨는 재판부가 1심에서 살인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본다고 판단하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장씨는 공판 과정에서도 정인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복부를 발로 밟는 행위를 하지 않았었다고 주장하며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이에 검찰도 이날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맞대응을 예고했다. 무기징역이라는 양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항소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앞서 장씨에 대해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었다.

전문가들은 향후 검찰이 장씨에 대한 공소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항소심은 사실심이라 재판 과정에서 죄명이 바뀔 수 있다. 장씨에게 적용된 살인죄 혐의가 아동학대치사로 바뀔 가능성도 열려있는 셈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항소심 과정에서 장씨에 대한 혐의가 아동학대치사로 바뀔 경우 무기징역에서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며 “아동학대로 사망하게 만드는 사건이 추후에 발생하더라도 결국 살인죄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전례로 남을 수 있는 만큼 검찰은 공소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정서적 학대행위)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양부 안모(37)씨도 지난 18일 1심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일부에선 안씨의 형량이 장씨에 비해 많이 낮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검찰이 항소심에서 안씨의 형량을 높이기 위한 공소장 변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씨는 정인이가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는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장씨의 폭력행위를 말리지 않고 부추겼을 가능성도 있어 정인이 살인에 대한 ‘공동정범’ 혹은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안씨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도 “안씨가 장씨의 학대 행위를 제지했더라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심에서 재판부도 안씨가 오히려 양모를 적극적으로 도왔고 정인이 사망 가능성까지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며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해 형량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