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자신을 ‘성(性)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자’라고 표현한 김성태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번 판결이 혐오 표현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2단독 황순교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임 소장이 김 의장을 상대로 낸 5000만원 상당의 명예훼손·모욕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했다고 20일 밝혔다.
김 의장은 2018년 7월 31일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책회의에서 임 소장을 거론하며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구속됐던 전력이 있는 자”라고 말했다.
또 회의 뒤 국회 본관 복도에서 기자들로부터 “임 소장이 성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는 질문을 받자, 김 의장은 “그때와 지금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화면에 비친 화장 많이 한 그 모습, 또 그런 전력을 가진 사람이 군 개혁을 이야기하는 게 상황이 맞는 것인가”라고 답했다.
황 부장판사는 “김 의장이 당시 회의에서 군인권센터와 현 정권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이와 특별한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임 소장의 개인적인 성적 지향이나 과거 전력을 결부시킨 건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이는 전체적인 의미나 전후 맥락에 비춰볼 때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은 군 개혁을 주도할 자격이 없다거나 대다수 군인이 그와 같은 사람에 의해 주도되는 군 개혁을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가치판단을 표명한 것일 뿐 사실 적시라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자’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사실 적시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들은 이미 널리 알려졌기에 따로 명예가 훼손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황 부장판사는 김 의장이 임 소장에 대해 ‘화장 많이 한 그 모습’이라고 지칭한 게 모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인신공격적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부적절해 보이기는 하나 발언의 전후 맥락에 비추어 보면 이 또한 임 소장이 군 개혁을 주도하는 듯한 상황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감정이나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황 부장판사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은 있기 마련이나 모두에 대해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생존에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번 판결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을 빌미 삼아 소수자 혐오 발언을 일삼는 행태를 의정활동으로 해석해주고 피해자가 공적 인물이면 혐오 발언을 들어도 자력 구제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판결은 혐오 표현 확산에 부채질한 격”이라고 비판했다.
김승연 인턴기자